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 장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을 옆에 앉혀 놓고 혼자 떠들다시피 했다. 화제는 ‘무역’에서 ‘조선’으로 바뀌더니 ‘무기’로 옮겨 갔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 장비를 만든다. 최근 B-2 폭격기로 우리가 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저기에도 하나 있지 않은가. 그걸 나에게 줬다. 아마 회사에서 준 것 같다. B-2 폭격기는 우리가 했던 작은 작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 백악관 집무실 탁자엔 B-2 스피릿 전략폭격기 모형이 놓여져 있었다.

36시간. 그게 전부를 쓸어버렸다. 아무도 그런 건 본 적이 없다. 36시간 동안 오가며, 단 하나도 문제가 없었다. 나사 하나도, 볼트 하나도 빠지지 않았고, 비행기 하나도 문제없었다. 사소한 문제조차 없었다. 사실 우리는 급유기 52대를 동원했고, 많은 항공기를 썼지만, 사람들이 주목한 건 B-2였다. 그걸 어떻게 운용했는지를 말이다.
‘36시간’은 지난 6월 21~22일 미국의 B-2 7대가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를 떠나 이란의 지하 핵시설인 포르도와 나탄즈를 폭격한 뒤 되돌아온 사건을 뜻한다. 정확히는 37시간이었다. 디테일에 약한 게 트럼프 대통령의 특징이다.
‘트럼프 번역기’를 돌려본다면, “미국 무기가 성능이 좋으니 한국이 많이 사달라”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찾아 “한국은 한반도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앞으로 해나갈 것”이라며 “우선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늘어난 국방비는 우리 군을 21세기 미래전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스마트 강군으로 육성하기 위한 첨단 과학기술과 자산을 도입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방역량 강화 노력을 적극 지원하고 한·미 간 첨단 방산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한마디로 “국방비를 늘리눈데, 미국 무기도 많이 사보도록 하겠다”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문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내년 방위력 개선비 20조 1744억원
‘트럼프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정부가 내년도 국방 예산을 66조 2947억원 규모로 편성했다고 29일 밝혔다. 올해 국방비보다 8.2%, 5조 478억원 늘어난 수치다. 2008년(8.7%) 이후 최고 증가율이다.

국방 예산 중 군사력 운영을 위한 전력운영비는 올해보다 6.3%는 46조 1203억원, 군사력 건설을 위한 방위력개선비는 13.0% 증가한 20조 1744억원으로 짜일 계획이다. 방위력 개선비는 미래전에 대비하려고 한국형 최첨단 전투기, AI·드론·로봇 등 첨단 무기체계 도입에 집중적으로 투입된다.
이쯤 되자 여기저기서 요란스럽게 설레발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뭐를 사 온다고 하더라, 뭐를 재검토한다더라 등등. 그러나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현재까지 무기체계 도입 사업에서 추가하거나, 변경하거나, 다시 검토하는 것 없다. 빨라야 내년 예산부터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결국 떠도는 얘기들은 국방비 증액에 슬쩍 숟가락을 얻으려는 각 군, 희망에 부푼 관련 업체가 부풀리고 있다. 그리고 국방 예산안 증액도 25일 정상회담을 반영한 조처가 아니다. 예산안은 며칠 만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방위력개선비의 세부 항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내년엔 정부가 국산 무기 개발에 예산을 집중하겠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제 차분하게 무엇을 사는 게 우리에게 좋을까 먼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무턱대고 미국의 요구에 급급하게 된다면 자칫 예산 낭비를 부를 소지가 다분하다.
미국 무기, 최소 8조원 어치 사들일 전망
물론 앞으로 군의 전력증강사업에서 미국 무기나 미국의 장비·부품이 쓰이는 국산 무기 생산이 이전보다는 더 용이하게 채택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국내 개발이 아닌 국외 구매로 결정된 전력증강사업에서, 더군다나 후보군에 ‘메이드 인 유에스에스(Made in USA)’가 들어있을 경우 ‘당첨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사업들을 읊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특수작전용 대형기동헬기 사업이 있다. 육군의 특수작전 능력을 위한 공중침투 능력을 확보하고, 공군의 탐색구조 능력을 보강하는 특수작전용 대형기동헬기 18대를 2031년까지 3조 7000억원을 들여 사오는 사업이다. 미국 보잉 CH-47F ER과 록히드마틴 CH-53K가 유력한 후보다. 둘 다 미국의 방산회사다.
또 VIP 국내 공수작전 수행을 위해 생존성과 지휘통제능력이 향상된 지휘헬기-Ⅱ 사업은 2031년까지 8700억원으로 4대를 확보하는 목적이다. 유럽 에어버스 H225M, 미국 벨 Bell 525,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AW-101, 미국 록히드마틴 S-92A+가 참가할 예정이다.
해상작전헬기는 적 함정·잠수함을 탐지하고 공격한다. 해군의 주력 해상작전헬기인 링스는 노후화해 이를 대체하는 해상작전헬기-Ⅱ가 진행 중이다. 2032년까지 2조 8700억원으로 12대를 구매하는 게 사업의 개요다. 록히드마틴 MH-60R이 사실상 단독후보다. 경쟁 기종들은 해군의 요구 사항에 미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군은 MH-60R 12대를 올해부터 배치해 쓰고 있다.
2031년까지 7700억원으로 국외구매하는
장거리함대공유도탄(SM-6급) 사업은 말 그대로 SM-6를 사겠다는 사업이다. SM-6는 KDX-Ⅲ 배치-Ⅱ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한 뒤 적 항공기·순항미사일·탄도미사일을 요격한다.
이들 사업만 다 합해도 규모가 8조 2100억원, 59억 달러가 넘는다. 과장하기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Six Billion(60억)”으로 보일 것이다. 이 숫자만 그에게 던져줘도 한국은 체면치레 이상은 한 셈이다.
복잡한 초식이 필요한 항공통제기와 대형공격헬기
트럼프 대통령이 청구서를 들이밀기 전에는 미국 무기가 탈락하는 분위기인 전력증강사업도 재검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게 2031년까지 3조 900억원 예산으로 신형 항공통제기 4대를 도입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이다. 현재 스웨덴 사브 글로벌아이와 미국 L3해리스 G6500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공군의 내심은 보잉 E-7A다. 공군이 4대를 운용하고 있는 E-737 피스아이의 업그레이형이 E-7A다.

보잉 E-7A의 도입 가격은 예산 범위를 넘어섰다. 보잉 E-7A를 사오려면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 그리고 보잉은 지난 6월 4차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다만 3차 입찰 때 제안은 유효하다는 게 보잉의 입장이다.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은 육군 기동사단에게 실시간으로 항공화력을 지원해 공세적 종심기동작전의 공격 속도를 보장하려고 2028년까지 3조 3000억원을 들여 대형공격헬기 36대를 외국에서 사 오는 것이다. 사실상 단독 후보인 보잉 AH-64E 아파치 가디언도 예산 범위보다 비싸다.
사업이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는데, 이번에 재검토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 일각에선 아파치 도입 대수를 36대에서 12대로 줄이는 대신 롱보 레이더 탑재 기체를 늘리고, 멈티(MUMT)와 장거리 공격 능력을 추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업 대상이 보잉이다. 보잉이 선정되려면 항공통제기 2차 사업과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의 예산을 모두 증액해야만 한다. 초식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보잉이 가격을 최대한 내리면서, 한국에게 제공할 편익을 올리는 자세를 보인다면 가능성이 올라갈 것이다.
미국 무기 충동구매는 혼란과 예산 낭비만 불러
아무리 압력이 거세다고 하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분명히 미국에게 말하자.

공군의 공중급유기 2차 사업(2029년·1조2000억원·2대)은 2024·2025년도 국방 예산에 태우지 못해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공군은 현재 유럽 에어버스 KC-330(A330MRTT) 시그너스 4대를 공중급유·수송기로 쓰고 있다. 똑같은 기종을 더 들여오는 게 운용비가 덜 든다. 그래서 공군은 KC-330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트럼프 청구서’로 보잉 KC-46 페가수스가 이 사업의 복병으로 떠오른다는 얘기가 있다. KC-46은 미국의 최신 공중급유기이지만, 고질적인 품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 공군은 KC-46의 급유봉 결함 때문에 2022년~2025년 최소 4건의 사고·유사 사고가 일어나 2300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해상탄도탄요격유도탄 사업도 마찬가지다. KDX-Ⅲ 배치-Ⅱ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하는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을 2030년까지 8039억 원으로 해외서 사오는 사업이다. ‘해상탄도탄요격유도탄’이라 쓰고 ‘RIM-161 SM-3 블록 Ⅰ’이라 읽으면 된다. 최대 고도 400㎞의 중간단계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은 SM-3 블록 Ⅰ만 갖추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사업타당성조사에서 도입 규모와 전력화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산 L-SAM과 겹치기 때문에 많이, 그리고 빨리 배치할 필요가 적다는 논리다.
패트리엇 PAC-3 MSE를 더 배치하자는 일각의 주장은 타당성이 낮다. 국산 천궁Ⅱ가 있는데, 굳이 PAC-3 MSE가 추가할 필요는 적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우리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국방비 증액 압박을 받고 있지만, 유럽 대부분은 무조건 구매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맹목적 구매는 기존 무기체계에 유지보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무기구매보다 군을 떠나는 간부들을 잡을 증액과 행정부담 완화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