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상 ‘이사 충실의무’ 확대안은 개악이다

2025-03-05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논란 끝에 국회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거대 야당 민주당이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려 했으나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이 문제 많은 법안에 집착하는 것은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해 크게 오해하기 때문이다. 한국 회사법 교과서를 보면 예외 없이 ‘이사의 충실의무란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 회사 재산을 편취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기술돼 있다. 충실의무란 이사가 회사에 충성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반주주 보호와도 거의 관련이 없다. 이사와 주주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의미가 글로벌 스탠더드다.

국회의장, 민주당 강행처리 제동

민주당, 이사의 충실의무 오해

주주보호 못하고 소송 남발 우려

지금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민주당 의원들은 ‘한국식 확장된 충실의무 개념’을 창조하려 한다. 충실의무 대상에 합병·분할·영업양도·이중상장 등 기업 리밸런싱의 경우뿐 아니라 신주 발행, 전환사채 발행, 상장폐지, 포괄적 주식교환 및 포괄적 주식 이전, 자기주식 취득, 이익배당, 신사업 진출, 계열사 지원, 임원 보수 등 모든 이사회 결의까지 넣으려 한다.

모든 주주 또는 총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아야 하며, 만약 일부 주주가 피해를 본다면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상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상법상 이사회가 결의해야 하는 사안은 69개 정도다. 이 모든 결의사항을 검토함에 있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확장된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한 회사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상법상 회사는 사단(社團)법인이고, 사단은 사람의 집합체다. 주식회사에서 사람이란 주주를 말하는 것이므로 주식회사는 주주의 집합체다. 이사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곧 총주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굳이 ‘주주를 위하여’라는 문구를 삽입하지 않더라도 이미 이사는 총주주를 위해 일하고 있다. 각국의 회사법 학자들도 이렇게 이해한다.

그런데 이사가 ‘회사와 주주 또는 총주주’에게 충실의무를 부담하도록 상법을 개정해도 새로이 일반주주가 보호받거나 새로운 권리를 얻는 것도 없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식으로 개정하면 일반주주들은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권리가 생겼다고 오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소액주주들이 소송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액주주들은 소송비용과 투입 시간 대비 성과가 없는 소송에 나설 이유가 없다. 이런 종류의 소송은 주주행동주의자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 싸움은 지배주주(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싸움이 아니라 경영진과 주주행동주의자들의 싸움이다.

주주라면 누구든 법률위반을 이유로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경영진은 회삿돈으로 방어할 수 없다. 이사의 개인적 위법 또는 불법행위에 대해 회삿돈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송 결과는 어떻게 될까. 판례가 쌓이면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는 주주에게 어떤 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 점차 밝혀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주주총회 및 이사회 결의를 충실히 집행했던 이사는 이런 종류의 소송에서 당연히 승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승소까지 4~5년 동안 이사는 엄청난 정신과 시간 비용은 물론 재산상 피해를 본 뒤가 될 것이다. 피해자는 이사뿐 아니다. 이사의 소극적 경영으로 기업가 정신이 훼손되고 기업의 성장은 정체될 수 있다.

이 문제는 계열회사의 리밸런싱 과정에서 불공정이 근본 원인이었다. 특히 합병비율이 문제 됐는데, 지난해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놨다. 합병비율 같은 것은 자본시장법에서 규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엔 시가에 따라 계산하게 돼 있는 것을 ‘공정한 가액’으로 계산하도록 개정하고자 했다.

일본에서는 ‘공정한 가격’으로 정하도록 한다. 이렇게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것이 일반주주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보호 방안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적어도 이치에 닿지 않는 상법 개정보다는 훨씬 일반주주에게도 유리하다. 상법 개정 무리수는 당장 중단해야 마땅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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