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복지재단 보고서
5621명 중 1529명… 27% 달해
조현병스펙트럼 32%로 ‘최다’
전문치료 없이 호전 어려운 중증
20대 노숙인의 40.6%가 앓아
“단순 생계지원만으론 자립 한계
경찰·의료기관 등 협력 대응을”

노숙인에 관한 정책 수립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이들에 대한 복지 정책이 쉽게 자립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당수 노숙인이 지원기관을 거친 뒤 자립하지 못한 채 다시 거리로 돌아가는 이른바 ‘회전문 현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숙인의 정신질환 유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이 자립하지 못하는 원인을 ‘의지박약’으로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숙인 자립을 위해선 복지 차원의 접근뿐 아니라 정신과적 의료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서울시복지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정신질환 거리노숙인 지원책 및 서비스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23년 서울시 전체 거리노숙인(5621명) 가운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는 1529명으로 유병률이 27.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전체 인구의 1년 유병률(6.5%)의 4배가 넘는 수치다.
의료기관에서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은 노숙인 비율은 10.6%였다.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숙인의 수진율이 전체 인구 수진율(5.7%)의 2배 수준에 달한 것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은 지난해 12월 이 보고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노숙인들은 전문적인 치료 없이는 호전되기 어려운 ‘중증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노숙인들이 진료받은 질환별로 비율을 보면 조현병스펙트럼장애(31.6%)가 가장 높았다. 이 병은 망상이나 환각, 혼란스러운 언어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심각한 정신장애로, 현실 검증력이 손상돼 비현실적인 지각과 비논리적인 사고를 보이는 병이다. 특히 20대 노숙인으로 좁히면 조현병스펙트럼장애 비율이 40.6%로 더 높았다. 알코올사용장애 25.6%, 기분장애 16.1%가 그 뒤를 이었다.
거주지 지원이나 생계 지원 등 단순 복지 차원의 지원만으론 노숙인을 자립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숙인 지원기관에서 설득을 거듭해 시설에 입소시키거나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 줘도 정신질환 탓에 자활에 어려움을 겪고 또다시 거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노숙인 지원기관 관계자는 “서울시의 기존 노숙인 지원 시스템에서 자립할 수 있는 노숙인들은 다 자립했고, 이제 남은 노숙인은 정신의학과 영역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노숙인 지원기관에도 정신건강전문요원 등 인력이 있지만 기존 인력만으론 역부족이란 목소리도 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노숙인 지원기관 내 정신건강전문 인력을 늘리고,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보건소, 경찰 등과 합동대응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선 노숙인전담경찰관 확대도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협업하는 정신응급합동대응팀 내규상 노숙인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전담 경찰관이 있으면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을 통한 위기 상황 대응도 쉽다는 것이다.
남 의원은 “정신질환을 가진 노숙인들이 제대로 된 회복 지원을 받지 못하고 길거리로 재유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주거지원 등 인프라 확대를 비롯해 정신건강전문요원의 전문적인 조력으로 치료와 회복의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당부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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