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의사 선생님, 제 담낭 왜 뗐나요?” 이런 질문 우리 병원에선 안 나온다

2025-04-06

Health&·한국간담췌외과학회 공동 선정김정윤 청담튼튼병원장

담낭수술 7500건 숨은 고수

환자 이해시키는 게 곧 신뢰

실력 갖춘 강소병원이 갈 길

외과를 선택한 건 단순했다. ‘의사는 수술이지’라는 마음에서다. 그중에서도 간, 담낭, 담도, 췌장을 다루는 간담췌외과에는 하드코어의 미학이 있었다. 복잡한 혈관이 얽힌 복부를 중심으로 기본 10시간 넘는 수술을 한다. 서로 다른 성질의 장기를 억지로 이어붙이는 일이다. 조직을 파괴할 때마다 나오는 출혈 하나하나가 압박감의 연속이다. 수십 개의 변수와 마주하고,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지켜본다. 수술의 무게와 낮아지지 않는 합병증률, 이걸 감당하려는 각오로 매 순간 긴장하고 넋이 빠진다. 김정윤 청담튼튼병원장은 “해야 할 게 많고, 일이 계속 터진다. 그래도 수술대 위에서 버텨준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면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김정윤 원장이 대학병원에 있던 시절, 하루 20시간 이상 수술실에 머무는 건 예삿일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2011년 교수직을 떠나온 뒤 환자 한 명씩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는 배꼽 부위에 1.5㎝의 절개창을 하나만 내 담낭을 절제하는 수술을 7500건 집도하며 이 분야를 개척해 온 재야의 고수다. ‘왜 수술받는지 아세요?’ 환자에게 늘 하는 질문에 그가 2차 병원으로 온 이유가 담겨있다. 2차 병원에서의 간담췌외과 의사의 역할을 김 원장의 시선에서 정리했다.

대학병원에선 수술만 해도 하루가 꽉 찼다. 동의서는 전공의가 받았고, 회진은 군단처럼 몰려다녔다. ‘수술 잘 됐습니다’ 한마디에 모든 설명이 축약됐다.

환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 몸에 생긴 변화와 어떤 합병증 가능성이 있는지 알고싶어 하지만 설명해 주지 않는다. 환자와 너무 멀다는 걸 느꼈다. 내 수술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고 싶었다. 2차 병원으로의 선택은 어쩌면 의사로서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가 1차 병원(의원)은 감기나 만성질환을 다루는 곳이라고, 3차 병원(상급종합병원)은 고난도 수술을 하는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이라면서 2차 병원은 그 중간 어딘가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2차 병원은 폭이 넓다. 중환자실을 갖추고 고난도 수술까지 소화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내가 몸담은 곳처럼 담낭 수술 정도만 가능한 곳도 있다. 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환자도, 의료정책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2차 병원에 오며 결심했다. ‘설명을 직접 하겠다, 15분을 앉아 얘기하자’. 영상 사진과 수술 녹화 장면을 환자에게 보여주며 “여기담석이 있고, 이 부위에 염증이 심합니다. 수술은 이렇게 진행되고, 회복은 이럴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15분을 쓰면, 환자의 눈빛이 바뀐다. 환자는 본인 몸을 처음으로 이해한다. 진료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표정이 다르다. 나를 ‘돈만 보고 기계처럼 수술하는 의사’가 아니라 ‘내 몸을 이해시키려 애쓰는 사람’으로 본다. 그게 신뢰다. 환자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 다시 한번 심장이 뛴다.

담낭 절제는 대학병원에선 큰 수술 사이, 수술방이 비었을때 하는 정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짧은 수술에도 환자의 삶이 달려 있고, 설명 15분에 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많은 사람이 착각한다. 2차 병원에 환자가 몰리면 좋은 일이라고. 현실은 그렇지않다. 수술실 유지 비용, 인력 고용, 장비 투자까지 모든 게 돈이다. 간담췌외과는 의사 혼자 수술 하나만 잘해서는 안 된다. 수술 도중, 그 후에 예상되는 여러 문제에 대비하고 해결 가능한 시스템과 팀워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술 가격(수가)은 정해져 있고, 국가 지원은 없다. 대학병원은 공공성이 있어 어느 정도 지원이라도 받지만 우리는 민간이다. 잘돼도 힘들고, 안 돼도 힘들다.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대학병원은 연구·교육에 집중하며 고난도 환자를 봐야 한다. 대신 중난도, 특히 담낭절제 같은 수술은 우리가 맡아야 한다. 중환자실이 필요한 복잡한 간담췌 수술을 일부 2차 병원에서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염증과 양성 종양, 암까지 대학병원과 동일하게 간 절제와 췌·십이지장 절제술을 하는 2차 병원도 있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간담췌외과 전문의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수술을 해도 된다는 ‘신뢰’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여기선 수술 안 받는다는 시선이 있을 때 2차 병원에서의 설명은 줄어든다. 그런 악순환을 끊고 싶었다. 환자가 내 병을 정확히 알고 왜 수술받는지 이해하며 의사가 어떻게 치료할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2차 병원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의료다. 밥 먹는 시간을 포기해서라도 환자가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싶다. 수술 전후 짧은 15분의 설명이, 한국 의료 시스템이 조금 더 신뢰받는 방향으로 가는 작은 시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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