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경 기자의 헬스박치기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이다. 건강관리도 마찬가지다. 관련 정보를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 해보는 게 백번 낫다. 건강에 대한 정보는 넘쳐 나지만, 실제 경험에 근거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헬스박치기’에선 기자가 직접 체험하고 느낀 생생한 헬스 이야기를 전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울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실제 정신 건강 상태는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 나도 모르게 마음의 병을 키우고 있던 건 아닐까’ ‘스트레스도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이렇게 쏘아 올린 작은 염려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방문을 이끌었다.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광진구의 조근호정신건강의학과의원. 늦은 오후 시간임에도 병원에는 대기 환자로 꽤 북적였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꼼꼼히 평가지를 작성 중인 사람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병원 내부는 밝고 아늑했다. 대기실에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느 진료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첫 방문이 약간 긴장됐을 뿐, 막상 병원에 가보니 생각보다 편안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조근호 원장이 부드러운 말투로 반겼다. 간단한 문진이 시작됐다. 의사에게 현재 상태를 설명했다.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때때로 신체 이상 증상이 나타나요. 머리가 아프고 숙면하지 못합니다. 제가 인지하지 못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조 원장은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권했다. 검사실 책상 위에는 모니터 한 대와 검사에 필요한 의료기기가 놓여있었다. 먼저 이뤄진 건 정량 뇌파 검사(QEEG). 뇌의 미세한 전기 활동인 뇌파를 측정해 전반적인 뇌 기능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수영모처럼 생긴 검은 모자를 착용했다. 모자 곳곳에는 전극이 주렁주렁 달렸다. 기존 제품은 끈적이는 젤을 사용해야 했지만, 해당 기기는 생리식염수만 살짝 주입하는 식으로 편의성이 개선됐다고 한다.

뇌파·심박수 변화로 뇌 기능 측정
검사 시간은 5분.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검사 도중엔 잠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뇌파 측정값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검사 종료 후 모자를 벗으니 머리카락이 살짝 헝클어졌다. 뒤이어 자율신경계(HRV) 검사를 시작했다. 심장박동 변화를 측정해 자율신경 활성도와 스트레스 반응을 파악하는 검사다. 센서가 달린 집게 전극을 양 팔목과 왼쪽 발목에 부착했다. 이번엔 눈을 감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심박 변이 그래프를 응시하며 또 5분간 검사를 받았다. 그래프를 보고 있으니 널뛰기를 반복하던 개인 주식 창이 떠올라 잠시 심박수가 요동치기도 했다.

상담을 위해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조 원장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꽤 충동적이시네요? 정상 뇌파와 달리 전두엽에서 알파파형이 많이 올라가 있어요. 통제 역할을 하는 뇌 기능이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도파민·세르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다만 약물 복용이 필요한 수준은 아닙니다.”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뇌 상태와 비슷하다니. 일련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했다. 며칠 전 충동적으로 구매한 귀걸이가 떠올랐다.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던 게 이유가 있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직관적인 지표를 보면서 상담을 이어가니, 현재 건강 상태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곧바로 HRV 검사에 대한 결과 해석이 이어졌다. 신체 건강 상태 ‘이상 무’. 가장 중요한 스트레스 지수는 ‘보통’이다. 걱정이 무색하게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낮았다. 심지어 자율신경 균형 상태는 ‘매우 좋음’을 가리켰다. 조 원장은 “편안함을 느끼는 부교감 신경과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올라가는 교감신경의 균형이 좋습니다. 스트레스 저항도나 피로 회복력 지표가 정상 범위 내에 있고, 원래 지닌 특성도 건강한 상태예요.”
객관적 지표 활용해 정신 상태 진단
신체 나이는 실제보다 한 살 더 적은 31세로 나타났다. 어쨌든 어리다니 기분은 좋았다. 뇌파 검사에서 받았던 충격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했다. 상담이 끝날 무렵 조 원장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듯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게 좋을까. 조 원장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몸을 가꾸는 것처럼 마음을 돌아보는 거죠. 다들 저마다의 힘든 스토리가 있습니다.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하고 싶은데,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괜히 이야기를 털어놨다가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요. 이럴 때 정신과를 소통 창구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 대나무숲처럼 편히 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요. 필요에 따라 약물치료도 같이 하면서 도움을 받다 보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거예요.”
모든 검사와 상담을 마쳤다. 시계를 보니 1시간20분이 흘렀다. 기분 탓이었을까. 퇴근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심각한 문제도,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었지만 왠지 마음이 개운했다. 마음에 생긴 상처도 빨리 치료할수록 좋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가듯,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를 끄집어내는 게 순서다. 기억하자. 대나무숲은 언제나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