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연어양식은 바다에서 해야 한다고 할 때, 저는 육상 양식을 고민했습니다. 해양 평균 수온이 올라갈 거로 예상했거든요. 평균 수온이 상승하면 해상 연어양식이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15년 전만 해도 제주 바다에서 잡히던 방어가 이제는 강원도에서도 잡히거든요. 양식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경험으로 알았기에 처음부터 육상 양식에서 답을 찾은 거죠.”
2009년, ‘연어는 맛있는 음식’ 정도로만 생각했던 한 남자가 ‘빈손’으로 온 가족과 함께 보금자리였던 경기도를 떠나 강원도 양양군으로 왔다. 성실했던 그 남자는 리어카를 끌고, 활어 유통을 하며 살림을 꾸렸다. 어느 날 남대천에 방류되는 연어 치어를 보고 난 후, 눈에 연어가 자꾸만 밟혔다. 결국, 정착 이듬해에 ‘맨땅에 헤딩’하듯 연어양식에 뛰어들었다. 비전공자에 외지인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역경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마침내 국내 최초로 연어 육상 양식에 성공했다.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은 설수산 안석영 대표의 이야기다.
활어 유통 수입으로 육상 양식 기술 개발
사업 초기에는 활어 유통업을 주로 하면서 소규모로 연어양식을 병행하는 구조였다. 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곧 활어 유통업에 하향 곡선이 그려질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서 2014년, 안 대표는 본격적으로 연어양식업에 몸을 던졌다. 당시만 해도 연어양식은 해상 가두리만 있던 시절이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은 있었지만, 비전공자에 처음부터 쉬웠던 일은 아니었다. 3~4m 크기의 작은 수조에서 300~400여 마리의 치어를 키우면서 시작했다. 치어 방류 사업 후 활어차에 남은 치어를 모아 몇 달 키워서 바다에 보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동해생명자원센터의 한 연구원이 “해수 순치를 하지 않고 방류하면 다 죽는다”고 귀띔했다. 무슨 말인지도 알아들을 수 없던 그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어느 정도 자라면 바다로 나간다. 자연에서 태어난 연어는 스스로 삼투압 작용을 하지만, 양식 연어는 그렇지 않다. 인위적으로 시기와 수온을 맞춰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물에서 바닷물로 전환하는, 해수 순치의 핵심이었다. 해양심층수를 확보해 온도를 변경하면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갔다. 수년간 데이터가 쌓이며 해수 순치에 관해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노하우를 습득하게 됐다. 안 대표는 “해수 순치가 연어양식의 최우선 과제라고 보면 됩니다. 이 과정을 잘해야 언어의 면역체계가 갖춰지거든요. 며칠 만에도 끝낼 수 있지만, 잘 됐는지에 관한 판단은 60일까지는 기다려 봐야 해요. 너무 강압적 순치하면 생존력이 떨어집니다”라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연구에 뛰어든 그는 2019년 어민 후계자로 선정된 이후 2021년 강원도립대학교에 입학해 ‘스마트양식과정’을 마쳤다. 기술력에 이론을 더한 것이다. 양식장은 400평에서 1,000평으로 확장됐고, 1년에 출하하는 연어 수는 30만 마리로 늘었다. 순치율 98%에 도달하며 ‘연어 해수 순치를 위한 육상 해수양식장’ 특허도 출원해 연어 육상 양식 선두주자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토종 첨연어 양식 성공으로 바이오 사업 진출
최근에는 토종 ‘첨연어’ 양식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더 붙었다. 사업 초기에는 대서양 노르웨이 연어와 맛을 견줄 수 있다는 ‘은연어’, 우리나라 무지개송어의 사촌 격인 ‘스틸헤드’, 이렇게 두 종류만 양식했다. 토종인 첨연어는 자연 회귀량이 워낙 적어 양식을 한다 해도 수익이 나지 않을 거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8년부터 첨연어의 회귀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토종 연어의 멸종을 직감한 안 대표는 그렇게 첨연어 양식에도 뛰어들었다.
선한 마음은 언젠가 보답받는 것일까. 어느 정도 유통 활로를 확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첨연어 양식이었지만, 뜻밖에도 첨연어는 바이오산업과 밀접한 어종이었다. 안 대표는 “첨연어의 정소에서 추출한 물질이 화장품과 의약품의 원료로 활용된다고 하더군요. 연어의 DNA에 인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해요. 첨연어는 일본이나 캐나다, 알래스카에서도 나오긴 하지만, 양식으로 성체까지 키운 건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식용으로 출하하려면 3~5년 정도가 걸리는데, 최근 양식법을 변경해 24개월 차에도 가능하게 됐어요. 맛도 노르웨이산 연어만큼 좋으니, 이보다 더 효자가 있을까요?” 연어 필레, 연어 스테이크, 연어포, 연어강정 등 다양한 연어 식품군이 설수산의 매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현재 안 대표는 첨연어의 바이오 사업 확장 가능성을 보고 기존 거래처를 줄이면서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연어의 고향 양양에서 지역 일자리 창출하고파”
설수산은 지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첨연어 양식 소문이 나면서 연어양식 선진국 스페인도 설수산에 관심을 표명할 정도이다. 2022년 마드리드에 있는 글로벌 사료회사 ‘디박’의 초청으로 현대화한 양식시설과 함께 대학도 견학했다. 안 대표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구상했던 새로운 형태의 수조 모습과 거의 일치하는 설계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대부분 원형이나 사각으로 만들어진 수조에서 양식을 합니다. 2018년 증축하면서 양식장 수조를 육상경기 트랙처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상상만 하면서 그림을 그려둔 게 있는데, 이 회사는 이미 설계를 마쳤더라고요. 올해 6월 완공이니, 어떻게 구현됐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육상 양식의 규모를 확장하고 연어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면, 스마트 양식 시설 전환이 급선무다. 스페인 사례를 적용해 양양 맞춤형 출하‧유통 연구&스마트양식 시설을 도입하기 위해 설수산은 지금 이사 준비에 한창이다. 설수산이 보유한 토지와 양양군청이 보유한 토지를 맞교환해 연어에게 새 둥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안 대표는 “연어양식을 위한 최선의 장소는 민물과 바닷물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장소죠. 현 양식장에는 바닷물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민물 확보가 어려워요. 지하수를 파도 염분이 섞여 있더라고요. 양양군청 부지는 바닷가에서 멀지 않으면서 바로 옆에 하천이 흘러서 연어를 키우기는 최적입니다. 개발이 제한된 부지긴 하지만, 연어양식에 필요한 민물이 원 없이 흐르니 지자체와 잘 협의해 무사히 이사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몇 년 후면 설수산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어엿한 청년의 나이가 될 설수산에서 안 대표는 두 가지 꿈을 꾸고 있다. 먼저 연어를 양양의 대표 지역 특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해 많은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연어 양식 규모를 키워 수산업 인재를 채용해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꿈이다. 안 대표의 말이다.
“인구 3만 도시인 양양군에 수산 관련 학교가 없더군요.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연어 양식 체험학습을 주 1회씩 하면 학생들이 관심 갖지 않을까요? 양양중‧고등학교에 동아리를 만들어서 체험학습을 추진해보자고 지자체와 논의 중이에요. 그런 아이들이 대학에서 수산 관련 학과를 졸업하게 되면 설수산이 제일 먼저 채용할 겁니다. 그렇게 양양군이 수산업의 명소가 되면, 대기업도 진출할 수 있고, 다른 지역 학부모도 귀촌할 수 있겠죠? 인구도 늘겠고요. 5년 안에 현실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