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재발견, 새로 쓰는 완주문화관광지도] (6)‘태국 음식을 연주하다’ 안녕타이 소순우 대표의 이야기

2025-08-18

뮤지션의 꿈, 그리고 가지 않은 길

화려한 뮤지션을 꿈꿨다. 그에게는 무대만이 인생을 걸 유일한 장소였다. 군악대에서도 드럼을 쳤고, 제대 이후에도 젊은 날을 음악에 미쳐 살았다. 주변에는 늘 음악 하는 친구들이 넘쳐났고 연주할 때면 환호하는 군중들의 열기에 휩싸이는 재미도 쏠쏠했다. 완주 전통 삼례시장에서 ‘안녕타이’를 운영하는 소순우 대표 이야기다.

그는 지금은 화려했던 무대를 버리고 삼례 전통시장에서 태국 음식을 판다. 예전에는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지금은 음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또 다른 점이 있다. 그때는 자신을 위해서 음악을 했지만 지금은 가족을 위해서 음식을 개발하고 만든다.

소 대표가 태국 음식을 만들게 된 사연은 아내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치앙마이 출신인 아내는 당시 한국에 유학을 왔었다. 여행가를 꿈꾸며 한국 음악을 좋아하던 아내는 어느 날 소 대표가 공연하는 팀에 관객으로 참여했고 자연스럽게 뒤풀이까지 이어졌다. 순박한 모습에 반했고 만남이 길어질수록 사랑의 마음이 커졌다.

아내를 만나면서 평생 음악에만 고려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성취라 할 만한 것이 드물었다. 아내와의 결혼을 앞두고는 ‘가장’이라는 무게가 한층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 아내는 요리에 재주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소 대표도 태국요리의 신세계에 흠뻑 매료되었다. 가끔 소 대표는 태국 음식이야말로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이 이끈 태국 음식의 세계

그들이 부모님의 연고가 있는 삼례에 터를 잡게 된 사연도 흥미진진하다. 부부는 초기 자본이 필요한 식당보다는 노점상을 먼저 떠올렸다. 마침 전주에 있는 남부시장 야시장에서 사업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고 야심 차게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이 사건은 부부 인생에 전기를 마련하게 해주었다. 흐릿했던 미래가 비로소 선명해졌음은 물론이다.

처음 부부는 남부시장 야시장에서 꾸에빙(구운 바나나)과 밀크티를 팔았다. 코코넛 옥수수 밀크티는 소 대표가 처음 태국 장모님을 만나러 갔을 때 해 주셨던 그 맛을 잊지 못해 언젠가 사업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렇게 됐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메뉴였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아서 밀크티는 부부 노점상의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모든 사업은 처음이 힘들다. 사업에 초보이기 때문에 하는 일도 어설프다. 초창기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완성도도 떨어진다. 대개의 사업자들이 힘들어하는 마의 구간이 있는 이유이다. 순조롭던 남부시장 야시장 사업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그랬듯이, 사업을 새로 시작한 부부에게도 큰 시련이었다. 그들은 이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태국으로 음식 여행을 떠났다. 말하자면 신메뉴 개발을 위한 명목이었지만 휴식도 필요했다. 그들 부부는 그곳에서 운명처럼 로띠를 만났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태국 여행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이모할머니인 빠데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노점에서 로띠를 만들어 파는데 미슐랭 가이드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소 대표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아는 상식으로는 미슐랭 등급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식당들만이 얻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점상에게 주어진 미슐랭이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 선입견은 빠데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깨졌다. 로띠를 먹기 위해 길거리에 길게 늘어선 줄이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동안 답답하기만 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아내는 빠데 할머니에게 그 비법을 전수받았다. 할머니도 부부의 사정을 듣고 재료 준비부터 숨겨둔 비법까지 아낌없이 알려 주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신메뉴를 선보이자마자 난리가 났다. 게다가 운도 따라주었다. 그때 백종원 씨가 텔레비전에서 로띠 열풍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로띠는 이 부부에게 잊을 수 없는 효자 상품이 되었다. 올해로 부부가 남부시장에서 야시장을 시작한 지 8년째이다. 요즘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부는 남부시장으로 향한다. 그들 삶의 인생을 바꿔준 손님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면 발길이 가볍다.

손님들은 노점상의 인연이 아쉬웠는지 가게가 있느냐고 연신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빠데 할머니처럼 노점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조금씩 바뀌었다. 이왕이면 안정적인 공간에서 손님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삼례 전통시장에서 입주 상인을 모집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했다. 기다리는 중 앞으로 어떻게 인테리어를 할지 구상하고 아내와 식당을 여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결과는 1차 실패. 기다리던 중 남은 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곳이 지금 ‘안녕타이’를 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다.

노점상에서 할 때는 두세 가지 메뉴면 충분했지만 본격적인 식당을 차리다 보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다시 태국으로 음식 메뉴 발굴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태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꾸에띠오를 만났다. 여기에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팟타이가 결합해서 ‘안녕타이’의 대표적인 세 가지 메뉴 노띠, 꾸에띠오, 팟타이 3대장이 완성되었다.

노점에서 식당까지, 안녕타이의 성장 스토리

소 대표의 식당 운영 원칙은 간단하다. 태국 고유의 맛을 살리되 한국인의 입맛을 충분히 반영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소 대표는 태국에서 직접 공수한 재료를 쓰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요리에 들어가는 쌀도 태국산만 쓴다. 좋은 재료야말로 음식을 만드는 이들에게 필수적이지만 원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게 식당일이다.

그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손님들도 만났다. 오토바이를 타고 창원에서 온 아저씨는 이후에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았다. 그 먼 곳에서 음식을 잊지 않고 찾아준 것이 더없이 고마웠다. 충청도 서산에서 온 손님은 해마다 지금도 잊지 않고 과일이며 해산물을 보내줄 정도이다.

이런 손님들을 볼 때마다 소 대표는 본인이 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 손님들이 있어서 오늘도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 대표가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 또 있다.

첫 번째, 아내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언젠가 일을 하게 되면 아내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꿈이 식당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둘째, 식당을 통해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손님들과 행복한 인연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에게 식당은 단순하게 음식을 파는 공간만이 아니다. 소통하고 즐기며 함께 하는 공간이다. 소 대표는 가끔 자신에게 주어진 이런 현실이 가끔 믿어지지 않는다. 이 시골 구석까지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주고, 주말마다 야시장의 단골들이 반겨줄 때면 사는 보람을 느낀다.

음식으로 전하는 감사와 소통

소 대표의 바람은 제대로 된 태국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을 만드는 것이다. 도심이 아닌 야외에서 태국 요리를 맛보는 손님들을 만나는 것이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사실은 그가 식당을 열면서 고심했던 인테리어도 태국스러운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태국의 풍경을 맛보면서 음식까지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안녕타이’에서 그걸 시도해 보았지만 공간의 특성상 그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게 할 수 없었다. 소 대표가 이국적인 느낌의 태국음식점을 넘어서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는 이유이다.

오늘도 그는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 문을 연다. 오늘은 또 어떤 인연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식당 문을 열 때마다 기대 반, 설렘 반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경험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 나라를 이해하는 데 음식만큼 좋은 재료가 있을까? 한 나라의 음식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 정서와 느낌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그는 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자신이 만났던 태국의 정겨움과 따뜻함을 담은 고유의 맛을 전달하고자 애쓴다. 이런 그의 마음을 말해주는 사례가 있다.

‘안녕타이’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메뉴가 있다. 바로 천 원짜리 메뉴이다. 엄마와 아이가 와서 서로 웃으면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행복했다는 아내의 말처럼 그도 이제는 장사가 아닌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안녕타이’가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처음 낯선 전통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안녕타이’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절박할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 그 고마움의 눈빛을 지금도 소 대표는 잊지 못한다. 그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듯이 그도 언젠가 사회에 작은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동남아 요리는 향신료가 강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먹기 전에 먼저 손사래를 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먹을 만하네’, ‘생각보다 맛있네’라는 반응이 뒤따른다. 이런 걸 보면 문화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매력적인 도구 중에 하나가 음식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그가 태국 음식 기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먹는다고 난 도저히 이걸 못 먹겠는데”라고 생각했던 음식도 막상 먹어보면 맛있었다. 그는 그게 참 신기했다. 음식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데서부터 그는 시작했다. 그가 음식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그 마음을 따라와 주었다.

부부는 힘이 들 때마다 빠데 할머니가 해주셨던 말을 떠올린다.

그들은 “허름하게 입은 사람 무시하지 마라. 돈 없는 사람도 맛이라도 봐야 한다.”라는 빠데 할머니의 가르침처럼 사람들에게 정으로 남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정성껏 만든 음식이라면 사람들도 마음을 열 것이라는 믿음이 오늘날의 ‘안녕타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안녕타이’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글=장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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