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증원 문제의 ‘달과 손가락’

2024-10-02

15개월 된 영아 A는 어린이집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목에 걸려 기도가 막혔다. 출동한 119대원이 심폐소생을 하며 가까이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수용 가능한지 묻자, 당직 의사는 “소아응급 전문의가 없으니 소아응급 처치에 특화한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로 가라”며 전원을 거부했다. 영아는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로 가던 중 결국 저산소성 뇌 손상을 입고 사망했다.

환자 B는 오른쪽 손목동맥이 유리에 절단돼 대량 출혈이 일어나자 사고 장소 부근 의료기관으로 실려 가 간단한 지혈 처치를 받은 후 동맥을 잇는 수술을 받기 위해 지방의료원, 대학병원 등 의료기관 네 군데를 전전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처음 실려 간 의료기관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중증 뇌 손상을 입었다.

사직사태 전 이미 난맥상 존재

증원 없으면 문제 일상화할 것

여야정협의 국민 배제 없어야

A, B는 올해 같은 응급실 대란이 없던 시절에 발생한 피해 사례다. 앞으로 전공의가 돌아와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응급 난맥상이다.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응급환자 진료 거부 사건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자 ‘함지박 돌리기’라는 속어까지 생겼다.

최근 낙상사고를 입은 유명인사가 응급실 20곳에 전화를 걸었으나 진료 거부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를 들어 일부 정치인들이 의료대란, 심지어는 ‘의료 붕괴’라는 표현을 써가며 우려하자 국민이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다. 응급환자 진료 거부의 근본 원인은 필수과목 의사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임에도 이에 대한 해결책 논의는 간데없고 정부 탓만을 하고 있다.

우선 지난 2월 전공의 사직 사태 이후 대한민국 의료는 공백이 발생하지 않았다. 작년과 같은 기간을 비교할 때 올해 건강보험 환자의 진료건수, 의료기관에 지불된 진료비는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증 급성기 환자를 전담하는 상급종합병원의 진료건수는 줄었지만, 아(亞)급성 또는 경증 환자들은 1, 2차 의료기관으로 분산되어 진료전달체계가 회복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일부 지방 소재 의료기관 응급실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현상은 응급실에 근무할 필수전문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생긴 구조적 문제다.

의사가 충분히 양성되지 않으면 향후 응급실 뺑뺑이 현상은 일상화할 위험이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 일부가 다른 병원으로 전직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공백이 생겨도 응급실을 잠정 폐쇄해야 하는 사태가 재발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의사를 충분히 양성하는 것이다. 의과대학 정원을 대량으로 증원해야 하는 이유다.

대량 증원된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응급의학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전문과를 지원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대 증원과 더불어 지방자치의과대학, 국군의무사관학교 등 공공의대를 추가로 신설해 필수전문과에 의무적으로 근무할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 이렇게 양성된 필수전공 의사들을 의료 소외지역의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하여 농촌이나 도서벽지 주민들이 빠르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 접근권을 확보하여야 한다.

일부에서는 “의료대란 주범이 일방적으로 의대를 2000명 증원한 것”이라며 “의사 수가 늘면 의료 질이 떨어지고, 국민 전체 진료비 부담이 늘어난다. 수험생 피해보다 의료 붕괴를 막아야 하므로 증원 논의는 시간을 두고 사회적 합의에 따라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1960년대 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던 논리와 유사하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던 정치인들은 지금 와서는 근시안적 사고라며 비판받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강국, 무역 강국으로 우뚝 섰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수한 의료인을 대량 양성하여 의료 사각지대를 줄여가야 한다. 인적 인프라가 충족되면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확보되고, 의학과 의술, 의료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선진국으로서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여·야·정 협의체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배제된 채 이해관계자들에게만 의결권을 주어 생명권, 의사직업 선택권, 의학교육 기본권이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빈다. 교육은 백년대계이고, 의료는 생명이다. 지금이 의료 선진국으로서의 미래를 기약하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의료 독점권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진료 의무이자 책임일 뿐, 진료하지 않아도 될 권리나 권한이 아니다. 의술을 제공하고 환자를 형제처럼 여기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없더라도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와 이를 존경하는 국민이 공존하는 사회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에 실기하여 국가위기론까지 확산된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의대 증원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집행하여야 한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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