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중앙은행(ECB)이 2027년 가상 유로화 ‘디지털 유로’를 시범 도입한 뒤 2029년 본격적으로 상용화하는 구상을 내놨다. 미국·중국·일본 등 경쟁국들이 디지털 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며 결제 시장 패권 다툼을 벌이자 유럽도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ECB는 30일(현지 시간) 유럽의회가 내년 법적 틀을 만든다는 전제 하에 2027년 중반부터 디지털 유로를 시범 발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9년 디지털 유로 도입을 목표로 삼은 ECB가 유럽연합(EU) 회원국에 내년까지 입법에 나서 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ECB가 2020년부터 논의를 시작한 디지털 유로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이다. 2020년 디지털 위안화(e-CNY)를 시범 발행한 중국 인민은행처럼 정부가 통제하는 구조다. 비자·페이팔 등 유럽 소매 결제시장을 장악한 미국 결제망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인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하면서 ECB 마음이 급해졌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실물 화폐에 연동된 가상화폐로 민간 발행사가 주도한다. 미국 의회는 지난 6월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준 및 담보 요건 명확화, 자금세탁방지 등 금융 법령 준수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지니어스 법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7월 법안에 서명하면서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했다. 유럽 내에서는 신용카드에 이어 스테이블코인까지 미국이 주도하면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유럽의 설 자리가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지난 27일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처음 출시됐다. 로이터통신은 “ECB가 미국 주도 민간 결제 수단에 대한 전략적 대안으로 디지털 유로를 제시했다”며 “ECB는 금융 자주권이 유럽 경제 주권을 지키는 핵심 열쇠이며 디지털 유로가 지정학적 마찰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다”고 짚었다.
디지털 유로 도입을 놓고 회원국들이 갈등을 보여 실제 도입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의원들은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것보다 미국처럼 암호화폐 중심으로 디지털 화폐 시장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부 의원들은 유럽 결제망 분열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민간 해결책을 선호한다”며 “독일을 비롯한 은행들은 대량 예금 인출 사태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