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10곳, 계약직 의사 5년새 45% 증가
“교수로 남기보단 개원·수도권 이동 선호 현상 탓”
전국 10곳 국립대병원의 계약직 의사 수가 5년 만에 절반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 대학병원에서 장기간 일하기보다, 개원을 희망하거나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을 희망하는 의사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세계일보가 27일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전국 국립대병원 10곳의 의사 수와 연봉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 병원의 계약직 의사 수(전공의 제외)는 2020년 478명에서 올해 3월 말 기준 693명으로 44.9% 늘었다. 같은 기간 정규직 의사는 2774명에서 2878명으로 3.7%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계약직 의사는 촉탁의·진료교수 등으로, 병원과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병동과 응급실의 진료를 보는 역할을 한다. 반면 정규직 의사는 정년이 보장된 교수(겸직·기금·임상교수 등)로, 진료뿐 아니라 의대생 교육과 연구를 함께 맡는다.

◆ 젊은 의사들, 개원 혹은 수도권 대학병원 이동 선호
계약직 의사가 급증한 건, 지역에 남아 교수직을 원하는 젊은 의사들은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원을 선택하거나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을 원한다. 교수 정원을 채우지 못하다보니 계약직 의사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의 한 국립대병원 A 교수는 “경제적 이유로 개원을 하거나, 아이 학군 등 때문에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의사들이 많다”며 “지역에 남는다고 해도 짧은 기간만 계획하고 계약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A 교수는 “전공의, 임상 등 제자들이 대폭 줄면서 진료는 물론 연구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교수 인기 하락에…급감한 젊은 ‘임상교수’
실제 충북대병원의 경우, 정규직 중 임상교수가 2020년 65명에서 올해 33명으로 반토막났다. 임상교수는 해당 병원의 교수 임용을 희망하는 젊은 의사들이다. 전북대병원도 같은기간 임상교수가 55명에서 47명으로 줄었다. 반면 계약직인 진료의사는 36명에서 53명으로 늘었다.
경북대병원은 정규직 의사가 2020년 326명에서 올해 332명으로 소폭 늘어나는 동안, 계약직 의사는 34명에서 94명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경상국립대병원도 본원 정규직 교수가 2020년 153명에서 올해 152명으로 줄어든 반면, 계약직 교수는 16명에서 32명으로 늘었다. 분원 정규직도 2020년 117명에서 올해 92명으로 줄었지만, 계약직은 27명에서 38명으로 증가했다.
수도권과 거리가 가장 먼 제주대병원 사정도 심각하다. 정규직 교수는 2020년 149명에서 올해 140명으로 줄었다. 반면 계약직 교수는 16명에서 21명으로 늘었다.

◆ “3억 넘게 줘도 글쎄”…몸값 뛰는 ‘계약직 의사’
지역에 의사가 귀해지다보니 이들 계약직 의사 연봉도 갈수록 뛰고 있다. 올해 강원대병원의 계약직 의사 중 촉탁의 평균 연봉은 3억2000만원으로 책정됐다. 겸직교수(1억1514만원), 기금교수(1억8413만원), 임상교수(1억7066만원) 등 정규직 교수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경상국립대병원도 올해 계약직 교수 평균연봉이 본원(2억8000만원), 분원(3억2700만원)으로 조사됐으나, 정규직 교수는 이의 절반 가량인 1억5000만~1억6000만원 정도 책정됐다.
제주대병원도 올해 계약직 교수가 2억4400만원 가량 지급받을 예정으로, 정규직 교수인 겸직교수 연봉(1억6700만원)을 크게 앞질렀다.
다만 국립대병원 중 서울대병원의 경우엔, 국내 빅5병원에서도 최상위로 꼽히는 병원인 만큼 정규직과 계약직 간의 인원과 연봉 차이가 크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은 2020년 정규직 교수가 492명에서 올해 532명으로, 계약직은 172명에서 240명 늘었다.
연봉 또한 올해 정규직 교수가 겸직·임상 각각 1억5600만원, 2억7300만원을 지급받게 될 예정이고, 계약직은 1억8000만원으로 책정됐다.
◆ 지역 의료 부실화…중증질환 치료 위기
장기간 연구와 진료를 함께하는 정교수가 줄고, 잠깐 일하다 떠나는 계약직 의사들이 늘며 지역의료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의 한 국립대병원 B 교수는 “서울 지역의 빅5병원 말고는 교수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는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특히 지역은 의사 구인난이 심각해 그만큼 의료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증질환 치료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젊은 의사들이 지역에서도 대학병원 교수직을 매력적인 진로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국립대병원이 지역 의료의 핵심 거점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정주 여건 개선과 교육·연구 지원 확대, 당직 부담 완화 등 실질적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realsto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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