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이 변했다. 인공지능(AI)이 변화를 주도하지만, AI가 전부는 아니다. AI와 더불어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있다. 연전연승하며 세계대회를 석권하고 있는 한국의 신진서 9단이다. 지금은 세계가 신진서 바둑을 연구한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농심신라면배 최종전. 이 대회 우승컵을 놓고 신진서와 중국의 강자 딩하오가 맞섰다. 이 바둑의 한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기보〉에서 백을 쥔 신진서는 두 곳의 단수를 모두 생략하고 백1로 가만히 육박했다. 묘하다. 사납지 않다. 칼을 겨누고는 있지만 부드럽다. 절제와 함축이 느껴진다. AI를 보니 놀랍게도 이곳이 블루 스폿이었다. 신진서는 이 한수로 대세를 장악했다. 사납기 이를 데 없던 신진서가 모종의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신진서 바둑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신진서의 기풍은 무엇일까. ‘신공지능’이란 말이 있지만, 나는 이 표현에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AI가 모든 설계를 맡고 신진서는 그것을 실행하는 꼭두각시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AI 이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류 기사들은 저마다 브랜드가 있었다. 고바야시의 지하철 바둑, 다케미야의 우주류, 조훈현의 속력행마, 이창호의 신산(神算), 유창혁의 공격. 조치훈은 폭파전문가였고, 강한 생명력으로 버텨낸 서봉수는 잡초류였다. 끝없는 인내와 귀신같은 계산으로 승부한 이창호 9단은 돌부처였고, 그걸 흔들고자 조훈현은 전신(戰神)으로 변했다. 대국 방식을 좌우하는 영원한 주제는 ‘실리’였다. 실리를 먼저 차지하고 타개에 나서느냐, 천천히 균형을 맞춰나가느냐.
그렇다면 신진서 바둑은 어떤 스타일일까. 신진서는 전투형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그는 화산같이 뜨거운 전투력으로 승리를 쌓았고, 일찌감치 강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14살 때인 2014년 최우수 신예기사상을 받았고,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목격하게 된다. AI에 푹 빠져들었다.
AI는 화점만 보면 삼삼에 들어간다. 실리를 중시한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AI는 틈만 나면 돌을 버린다. 실리를 아낌없이 내준다. AI는 어느 쪽도 아니다. 그 장면의 최선을 추구할 뿐 기풍이 없다. 하지만 인간 고수들은 다르다. 타고난 성격이 있고 취향이 있고 실리에 대한 선호도에서 차이가 있다. 다시 농심배 〈기보〉로 돌아가면 멋진 한 수로 크게 우세해진 바둑이 딩하오의 최강 저항에 휘말려 크게 역전되고 만다. (14집 불리) 하지만 숨어있는 공배 하나가 수상전의 급소였고 신진서가 그곳을 찾아내며 바둑은 다시 팽팽해진다. 그리하여 펼쳐진 최후의 결전에서 신진서는 백척간두의 수읽기 싸움 끝에 승리를 쟁취한다.
이 바둑을 TV에서 해설한 박정상 9단은 “명승부였다. 신의 영역에 가까운 수읽기 싸움이었다. 신진서 9단의 힘과 유연함, 그리고 승부처에서의 동물적 감각이 역전을 가능케 한 것 같다. 패자인 딩하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소신산(小神算)으로 유명한 박영훈 9단은 약간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신진서는 형세판단이 누구보다 강하다. 초반엔 고전이 많지만 정확한 형세판단 아래 중후반에 힘을 낸다. 신진서처럼 연전연승하려면 힘만으로는 안 된다. 부드러움을 갖춰야 하고 계산이 정확해야 한다.”
힘과 부드러움은 바둑의 쌍벽이다. 그 점에서 〈기보〉 속 신진서의 한 수는 불후의 명수로 기록에 남을 것이다. 농심배와 난양배를 휩쓴 신진서의 중화 대첩이 태풍처럼 지나간 지금에도 그 어떤 전투 장면보다 이 한 수가 뇌리에 선명하게 찍혀있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