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끝, 새 학기 시작!’인 2월 말 3월 초 무렵은 여행지를 고르기가 까다로운 시기다.
개학으로 마음은 분주하고 계절은 겨울도 봄도 아닌 애매한 상태니 말이다.
새 학기를 맞아 아이들에게 배움의 욕구를 샘솟게 하며 꽃샘추위나 황사에 대한 걱정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 이 정도 조건을 채워준다면 완벽하지 않을까.
그렇게 골라 찜한 여행지는 바로 충남 서천과 대전이다.
생태 1번지, 충남 서천
마음은 이미 봄을 향하는데 자연 풍경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이맘때, 아이 손 잡고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으로 가보자. 초록빛 가득한 세상에서 봄을 넘어 여름까지 계절을 훌쩍 앞지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에코리움은 국내 대표 생태 여행지인 국립생태원의 중심 전시관으로 세계 5대 기후대를 재현한다.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으로 이뤄지며 일반적으로 열대관에서 관람을 시작한다.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서
5대 기후대 ‘하루 만에 지구 여행’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선
4600여종 해양생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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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00㎡ 규모의 대형 온실에 조성한 열대관에 들어서면, 이국의 열대지역 어딘가로 순간이동한 기분이다. 겨울에도 22도 이상 온도가 유지돼 입고 온 겉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열대우림을 따라 걷다 보면 중간중간 신기한 파충류와 어류를 마주하게 된다. 세계 최대 담수어로 알려진 피라루쿠, 주둥이에 난 뿔이 코뿔소를 닮았다는 코뿔이구아나,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이 중 하나인 알다브라육지거북, 명작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보아뱀 등 책에서나 볼 법한 이색 생명체가 가득하다. 뿌리식물인 시서스가 한올 한올 늘어져 터널을 이루는 공간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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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한 열대관을 벗어나면 이내 건조한 사막관에 이른다. 몇발짝만 걸었을 뿐인데 다른 기후대에 도달하다니, 에코리움의 매력이다. ‘하루 만에 지구 여행’이라는 표현이 괜한 말이 아니다. 울창한 우림을 걷어낸 사막 풍경에는 생명력 강한 선인장들이 초록빛을 대신한다. 사막관 입구 쪽에는 사막여우가, 출구 쪽에는 검은꼬리프레리도그가 생활하고 있어 시작부터 끝까지 엄마 미소를 짓게 된다.
지중해관에선 허브와 올리브 나무가 어우러지는 평온한 풍경이 이어지는 가운데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주 곶자왈을 재현한 온대관은 에코리움 5대 기후관 중 유일하게 야외 전시관과 연결된다. 설악산 계곡지역 식생을 주제로 꾸민 야외에서는 수달과 검독수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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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극지관은 개마고원과 타이가, 툰드라를 거쳐 북극과 남극을 체험하는 코스다. 북극곰, 북극여우 같은 극지 생태계를 보여주는 박제 표본이 전시된다. ‘다른 전시관보다 다소 무미건조하네’라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 귀여운 펭귄들이 등장해 아쉬움을 한껏 달래준다. 남극과 북극에 서식하는 펭귄들의 소소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껍다. 그야말로 무해한 즐거움이다.
아이와 함께라면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생태 체험관 미디리움도 놓쳐서는 안 된다. 미디리움은 에코리움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의 방문자센터에 위치한다. 디지털 체험 전시물을 통해 생태를 배우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라 아이들이 좋아한다. 방문자센터 인근의 CITES(국제적멸종위기종) 동물보호시설까지, 실내 공간 위주로만 돌아봐도 알차다.
국립생태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국내 유일의 해양생물자원 전문 연구·전시·교육 기관인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있다. 4층 규모의 전시관 씨큐리움을 운영하며 일반인에게 해양생물을 배우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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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큐리움에 들어서면 초대형 LED 미디어아트와 가운데 우뚝 선 생명의 탑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생명의 탑은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상징 조형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우리나라 해양생물 다양성을 보여주는 4600여개 해양생물 표본 병이 수직 구조로 쌓여 있다. 탑 높이가 무려 25m. 거대한 탑이 미디어아트와 화려하게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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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관람 동선은 4층에서 내려오는 순서로 연결된다. 2개 층에 걸쳐 다양한 해양생물 표본을 전시하는데 바다 위를 유영하는 듯한 고래 골격 표본이 인상적이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대왕고래를 배경으로 인증사진도 남길 수 있다. 전시실 외에 아이들이 놀이와 체험을 통해 해양 생태계를 경험하는 ‘바다마을 고래고래’, 해양생물 관련 이야기를 3D 입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해양영상실 등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떻게 이런 대형 생태 명소가 인구 5만여명의 군 단위 작은 지자체에, 그것도 장항 일대에 모여 있을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1989년 장항국가산업단지 조성이 발표되면서 갯벌이 매립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갯벌 매립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개발과 보전을 놓고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갯벌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정부 대안 사업을 진행했고 결과물로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탄생한 것.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서천 생태 여행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사계절 푸릇한 장항송림산림욕장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서천 갯벌이 나온다. 울창한 송림과 폭신한 갯벌, 잔잔한 바다가 나란히 흘러가는 풍경이 그림 같다. 솔숲 속, 갯벌 위를 거닐며 자연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 송림에는 높이 15m, 길이 약 250m 규모의 장항스카이워크가 설치돼 상공을 걷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왜?” 질문왕에겐 대전이 제격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와의 여행지로는 과학 도시 대전이 제격이다. 대전 과학 여행은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우리나라 대표 과학관인 국립중앙과학관에는 자연사관, 인류관, 과학기술관, 천체관, 생물탐구관 등 다양한 과학 분야별 전시관이 있다. 시설이 방대해 하루에 모든 곳을 둘러보기란 무리다. 방문 전 아이의 관심 영역에 맞춰 미리 관람할 곳을 정하길 권한다.
‘호기심 자극’ 국립중앙과학관
과학 궁금증 해소하고
대전시민천문대에선 천체 관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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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꼭 방문해야 할 곳은 과학기술관. 생활과학·지구과학·기초과학·화학·생명과학 등 여러 분야를 체험하고 배우는 공간이다. 생활과학체험관에서는 ‘목욕탕에서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면 왜 피부가 찌릿찌릿하게 느껴지는지’ ‘옷가게 거울로 보면 왜 더 날씬하게 보이는지’ ‘녹음된 내 목소리는 왜 낯설게 들리는지’ ‘카메라 고정대는 왜 다리가 세 개인지’처럼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 궁금해했을 질문들에 대한 과학적 해답을 알려준다.
장영실이 만든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와 옥루 복원품,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인터랙티브 영상, 우리나라 최초 고유 모델 자동차인 포니 등이 전시된 한국과학기술사관도 흥미롭다.
아이들 나이대에 맞춰 기획한 전시관도 있다. 꿈아띠체험관은 6세 이하 영유아가, 어린이과학관은 5~7세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이, 창의나래관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아이들이 둘러보기에 적합하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관인 만큼 재미난 체험 위주로 구성했다.
어린이과학관에서는 로봇의 행동을 조합해 코딩의 원리를 배우거나 컴퓨터를 상대로 게임을 하고 로봇과 퍼즐 맞추기 대결을 한다. 창의나래관은 가상현실(VR) 라이더, 로봇 쇼, 드론 배틀 등 역동적인 체험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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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관과 천체관측소도 놓치면 안 될 포인트다. 천체관에서는 23m 반구형 돔 화면을 통해 과학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별과 우주를 여행하고 천체관측소에서는 태양과 우주에 대해 배운다. 천체관측소에는 보현산천문대에서 사용하다 이곳으로 옮겨온 우리나라 최초의 태양 관측 망원경이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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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과학관 천체관측소는 별 보기 프로그램은 운영하지 않는다. 이 점이 아쉽다면 과학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대전시민천문대로 가면 된다. 힐링 여행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에도 등장했던 대전시민천문대는 낮에는 태양, 밤에는 별과 성운, 행성, 달을 관측하는 프로그램을 상설 운영한다. 입구에서는 나의 별자리 스티커를 붙이고 별자리를 테마로 다양한 체험을 즐기도록 기획해 특별함을 더한다.
이 밖에도 국내 유일의 지질 전문 박물관인 지질박물관, 과학 분야 서적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IBS 과학도서관, 다채로운 과학 체험 전시물을 갖춘 신세계 넥스페리움 등 일대에 가볼 만한 과학 테마 명소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