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비감(悲感)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4-10-23

2022년 11월 별세한 윤관 전 대법원장은 1962년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75년 서울민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 발령을 받을 때까지 무려 13년간 호남 등 지방 소재 법원에서만 근무해 ‘시골 판사’라는 뜻의 향판(鄕判)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그래도 윤 전 대법원장은 그 누구보다 법관의 직업 윤리에 충실했다. 행여 변호사나 사건 관계인으로부터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식사는 외부 음식점 대신 구내 식당에서만 먹었다. 광주지법 판사 시절엔 누군가 집으로 보낸 여러 근의 쇠고기를 보자마자 근처 공터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전주지법원장으로 일하던 1986년 대법관으로 발탁됐으나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법원 직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전셋집을 구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영삼(YS)정부 임기 첫 해인 1993년 9월 김덕주 대법원장이 임기 도중 스스로 물러났다. 사상 최초로 이뤄진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이후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탓이다. 당시 감사원장이던 이회창 전 대법관은 회고록에서 YS의 호출을 받아 청와대를 방문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당신이 후임 대법원장을 맡아 달라”는 YS의 권유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 뒤 발표된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는 이 감사원장보다 고등고시 사법과 두 기수 후배인 윤관 당시 대법관이었다. YS는 왜 그랬을까. 공직자의 청렴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윤 대법관이 적격자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공직자 재산 공개 당시 윤 대법관은 5억여원을 신고해 대법관들 가운데 단연 꼴찌를 기록했다.

사법부 수장에 오른 윤관 대법원장은 향판 출신이란 점도 그렇지만 출생지(전남)와 대학(연세대)을 봐도 법원 내 비주류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과감한 개혁이 가능했는지 모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7년 영장실질심사 제도 도입이다. 그때까지는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사실상 검사가 결정했다. 영장 발부는 판사가 하지만 검찰이 제출한 서류 위주로 검토하니 아무래도 검사의 뜻이 그대로 관철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법관이 피의자를 불러 직접 심문한 뒤 구속 여부를 판단하게 되면서 영장 발부율은 상당히 낮아졌다. 피의자의 권익이 그만큼 신장된 것이다. 윤 대법원장은 임기 6년 내내 젊은 판사 시절과 마찬가지로 매일 점심식사를 구내 식당에서 집무실로 배달시켜 혼자 해결했다.

2023년 2월부터 서울고법원장을 맡고 있는 윤준 판사는 윤관 전 대법원장의 아들이다.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서울고법과 그 관내에 있는 지방법원들을 상대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서울중앙지법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및 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보니 민주당 의원들이 관련 질의를 쏟아냈다. 검찰의 수사 및 기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만큼 이 대표의 범죄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이에 윤준 서울고법원장은 “법관 입장에선 상당히 비감(悲感·슬픈 느낌)한 생각이 든다”며 “법원을 믿지 못해 압력으로 비칠 행동을 하는 것은 삼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하늘에 있는 윤관 대법원장이 속으로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하고 탄식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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