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에 어떤 직업을?” 여학생의 ‘기대’가 처음으로 남학생을 앞질렀다

2024-07-05

“서른살이 되었을 때 어떤 직업을 갖길 기대하나요”

3년마다 실시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시험에서 학생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원하는’ 직업이 아닌 현실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대하는’ 직업을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선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여겨지는 직업을 갖길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까지 한국 학생들의 답변 결과는 세계 주요 국가의 흐름과는 정반대였다. 한국에선 줄곧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직업을 기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흐름이 2021년 PISA 조사에 포함된 한국 남학생-여학생의 기대 직업에 관한 답변 경향에서 처음으로 역전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변수용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5일 세종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불평등 연구회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국 학생들의 성별 직업 기대치 격차 추이: 2000-2022’ 보고서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을 보면, 2021년 조사(2006년생)에서 여학생의 국제사회경제적직업지위지수(ISEI)는 65.32점을 기록했다. 반면 남학생은 63.45점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ISEI 점수 차이가 2점 가까이 났다.

한국 학생들의 남녀간 ISEI 점수에서 역전이 일어난 것은 2000년 조사(1986년생) 이후 처음이다. 2000년 조사에선 남학생(61.94점)-여학생(57.83점)으로 남학생의 직업 기대치가 더 높았다. 한국 남학생-여학생 간 격차는 이후 3년마다 이뤄진 PISA 조사 때마다 점차 줄어들었다.

ISEI는 직업의 사회적 지위를 10~90점으로 환산해 점수를 매긴다. 예를 들어 약학 계열 진학을 희망하면 ISEI는 90점에 가깝다. OECD 국가에선 여학생의 ISEI 점수가 높은 경향이 오랫동안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다.

다만 변 교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학생의 성적 등 다른 조건까지 고려하면 통계적 유의미성이 사라진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성적과 집안 배경 등이 비슷한 남학생과 여학생을 비교하면, 여전히 ISEI 점수에서 남학생의 우위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변 교수는 “한국 학생들의 기대 직업 지위에서 성별 차이가 감소 추이를 보이는 것은 여성의 직업적 열망 증가, 사회 규범의 변화, 젠더 정책 변화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다만 여전히 동등한 사회적·경제적 배경에서 자란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기대 직업 지위가 높지 않은 것은, 여학생들의 직업적 열망을 제약하는 사회적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국 고등학교의 직업교육이 기회의 문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직업 교육의 성별 격차: 한국 고교학점제에 대한 시사점’을 발표한 보스턴 컬리지 박사과정생 윤예린씨는 “직업교육을 택한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윤씨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마이스터고, 특성화고는 주로 남학생들에게 문호가 열려 있다. 마이스터고는 개교 이후 줄곧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6배 가량 많다.

남학교와 여학교간 내세우는 전공의 차이도 컸다. 윤씨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남학생만 다니는 전국 37개 특성화고 중 35개 학교가 기술·공학 관련 과목을 갖췄다. 반면 여학생만 다니는 전국 60개 특성화고 중 52개 학교는 주로 건강, 관광 등을 가르쳤다.

희망 진로가 어린 시절부터 성별화돼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이 지난해 5월 펴낸 ‘우리나라 여성청소년 희망직업 및 STEM 분야 진로계획 현황’ 보고서를 보면, “초등교육 단계에 이미 선호 직종의 성별분리가 뚜렷해 사회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집중된 직업군과 일치했다”고 했다. 보고서 저자인 조선미 여정연 부연구위원은 “가정환경과 유아교육 과정에서 형성된 성역할 규범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STE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을 가리키는 약어다.

최근 학생들을 중심으로 ‘좁은 선택지’에 대해 문제 제기가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기업에서 여성을 원하지 않고 여성 기숙사가 없다는 이유로 여학생의 학교 입학을 막은 A마이스터고에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공립학교인 A마이스터고가 오히려 자동차 산업 현장에서 성차별 채용 관행이 시정되도록 노력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인권위는 A마이스터고와 유사한 다른 자동차 산업 마이스터고는 여학생이 재학 중이거나 모집대상에 여학생이 포함돼 있는 점도 고려했다.

윤씨는 미국의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도입한 경력·기술교육과정(CTE)처럼 직업교육 대신 진로교육으로 접근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자고 제안했다. 윤씨는 “인문계를 가지 않을 학생들은 상당수 집 주변에서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을 선택해야 하는데 애초에 주어진 선택지가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며 “학생들의 선호에 따른 선택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한국은 현재 직업계 고교를 택하는 학생들에게 제한적인 선택지를 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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