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도환(41)은 2014년 7월29일을 잊지 못한다. 2013년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넥센에서 주전 포수로 기회를 잡아가던 시즌이었다. 허도환은 장염에 걸려 출전하지 못했다. 그날 박동원이 출전해 3안타 6타점을 터뜨렸다. 그 뒤 넥센의 주전포수 자리는 박동원에게로 향했고, 허도환의 출전 기회는 점점 줄었다. 허도환은 “나중에 생각하니 그때가 진짜 소중했구나, 내가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게도 기회는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허도환은 KBO리그의 대표적인 백업 포수였다. 긴 생명력으로 여러 팀에서 오래 버텼던 허도환이 유니폼을 벗고 마이크를 잡는다. 지난해까지 LG에서 뛴 허도환은 올시즌 MBC스포츠플러스에서 방송 해설위원으로 데뷔한다.
허도환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LG 방출 명단에 올랐다. 플레이오프를 마친 뒤 곧바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해설위원 제의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은퇴로 이어지게 됐다. 10월9일 대수비로 출전한 KT와 준플레이오프 4차전은 허도환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허도환은 2007년 두산에 입단해 데뷔한 뒤 넥센, SK, 한화, KT, LG까지 총 6개 팀을 거쳤다. 100경기 이상 출전한 적이 넥센에서 뛴 2013년(116경기) 딱 한 시즌뿐이고, 주전에 가까웠던 것 역시 3년 연속 90경기 이상 나간 2012~2014년 넥센 시절이다.
그러나 트레이드, 2차 드래프트 등으로 팀을 계속 옮길 정도로 백업 포수로서는 최고로 인정받았다. 2021년 시즌을 마치고는 생애 첫 자유계약선수(FA)가 되어 2년 4억원에 LG로 이적도 했다. 계약기간이 끝나고도 지난해에는 염경엽 LG 감독의 제안에 1년 더 활약했고 이제 유니폼을 벗는다.
모든 선수가 언젠가 은퇴를 하지만 은퇴식의 축복을 누리는 선수는 극히 일부다. 허도환도 방출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지만 마이크를 잡게 되면서 이제야 은퇴도 공식화 하게 됐다.
허도환은 10일 기자와 통화에서 “선수로서는 뛸 만큼 뛰었다고 생각한다. 백업포수로만 불리다가 유니폼을 벗는 것은 많이 아쉽다. 내게도 기회가 있었는데, 어떻게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했는데 (2014년) 그러지 못해서 아쉬움은 선수 생활 내내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길게 살아남은 것은 야구하면서 가장 잘 했던 것 같다. 살아남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게 프로야구인데 난 많은 분들 덕분에 오래 할 수 있었다”고 선수 생활의 기억을 정리했다. 허도환은 “아쉬움은 빨리 잊고 이제 다음 인생을 살기 위해 준비하겠다. 그래도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해설을 할 수 있게 됐으니 이것도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새 인생을 기대했다.
동글동글한 인상에 포수 장비를 찬 모습이 거북이를 닮아 ‘허북이’로 불린 허도환은 친숙한 이미지와 구수한 입담으로 새 길을 걸을 계획이다. 6개 팀을 거치는 동안 2018년 SK, 2021년 KT, 2023년 LG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을 쌓은 허도환은 백업 선수들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근래 들어 포수 출신 해설도 이성우 외에는 허도환뿐이라 포지션의 강점도 있다.
허도환은 “초반에는 실수를 많이 할 것 같다. 해설을 한다고 하니 친한 선수들이 전부 ‘네가 아무리 하루종일 떠드는 스타일이라지만 방송하면 떨릴 것’이라고 한다. 질책을 받으면 그만큼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팬들이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말을 못하는 그런 부분들을 솔직히 해드리고 싶기도 하다”고 변신의 각오를 밝혔다.
6개 구단에서 뛰었던 ‘허북이’는 이제 포수 장비 대신 정장을 입고 그라운드에 출근한다. 허도환은 “어느 야구장에 가도 팬들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런 환호는 이제 다시는 못 들을 거라 생각하니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갖고 생각하겠다. 야구장에서 만나는 팬들에게 앞으로 더 친근하게 인사드리고 싶다”고 ‘포수 허도환’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