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크 조코비치(7위·세르비아)는 1세트 게임스코어 4-5로 뒤진 상황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스(3위·스페인)의 서브 게임을 앞두고 주심에게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라커룸으로 이동한 조코비치는 왼쪽 다리에 붕대를 감고 다시 코트에 나왔다.
이때 테니스 레전드 존 매켄로는 현지 중계방송 해설에서 “조코비치의 이런 루틴은 처음이 아니다. 속으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조코비치는 알카라스의 강한 서브에 곧바로 1세트를 내줬지만, 2세트부터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통산 25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노리는 조코비치가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노린 알카라스를 넘어 호주오픈 남자 단식 4강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21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8강에서 알카라스에 3-1(4-6 6-4 6-3 6-4)로 역전승을 거뒀다. 호주오픈에서만 이미 10차례 우승한 조코비치는 2019년부터 올해 사이에 불참한 2022년을 제외하고 6회 연속 대회 4강에 올랐다. 1987년생 조코비치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메이저 단식 25회 우승 신기록과 함께 메이저 대회 단식 최고령 우승 기록도 세우게 된다.
조코비치는 이날 자신보다 16살이나 어린 2003년생 알카라스를 상대하며 1세트 막판 왼쪽 다리 근육통까지 겹쳤다. 메디컬 타임을 사용한 뒤 1세트를 내준 조코비치는 2세트부터 견고한 플레이가 살아나며 알카라스를 압박했다.
경기 시작부터 오른쪽 허벅지 부상으로 붕대를 감고 있던 알카라스의 플레이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코비치는 알카라스 보다 더 공격적인 스트로크 플레이로 상대 백핸드 공략에 성공했다. 알카라스는 3세트에서 범실을 11개나 범하며(조코비치 4개) 스스로 무너졌다.
조코비치는 알카라스의 집요한 추격 흐름 마다 정교한 서브로 포인트를 만들어내며 분위기를 끊었고, 마지막에 크게 포효했다. 이날 결과로 조코비치와 알카라스의 상대 전적은 지난해 파리 올림픽 결승에 이어 2연승을 거둔 조코비치 5승3패 우위가 이어졌다. 특히 하드코트에서는 세 번 만나 조코비치가 3전 전승을 거뒀다.
조코비치는 경기 뒤 “오늘 경기가 결승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제가 호주오픈에서 치른 가장 엄청난 경기였던 것 같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조코비치의 부상 상황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없지 않다. 조코비치는 이미 가짜 부상 논란에 여러차례 휘말린 바 있다. 2023년 호주오픈 우승 당시에도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부상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뒤따랐다. 상대 선수에게 부상이 생겼을 때 생기는 심리적 빈틈을 잘 파고든다는 의미인데, 부상 때도 그만큼 테니스를 잘 쳐서 생기는 의혹들이다. 매켄로 뿐 아니라 영국 ‘BBC’도 이날 상황에 대해 “조코비치는 치료를 받고 코트에 나온 뒤 인상적인 회복을 했다. 조코비치는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공격적으로 플레이했고, 통증이 사라지자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경기를 장악할 수 있었다”고 했다. ‘ESPN’은 4세트 알카라스가 자신의 벤치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장면에서 “알카라스가 조코비치를 따라 하는 것 같다. 부상을 입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분명히 괜찮을 것”이라고 조코비치의 부상을 물음표로 남겨뒀다.
하지만 알카라스는 조코비치 부상 이후 2세트 상황을 떠올리고는 “경기를 지배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제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바로 그것이었다. 2세트에서 그를 더욱 한계까지 내몰기 위해 조금 더 잘 플레이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코비치의 25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는 험난한 도전이 이어진다. 다음 상대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는 세계 랭킹 2위 알렉산더 츠베레프(독일)다. 조코비치는 츠베레프와 맞대결에서 8승4패로 크게 앞선다. 메이저 대회에서는 세 번 대결에서 조코비치가 모두 이겼다. 결승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인 세계 1위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