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여성 성착취 의혹 속 이례적 ‘단호한 조치’
왕위 계승 서열 제외 법안 등 영 정치권 언급 시작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 앤드루 왕자가 성범죄 의혹 끝에 왕자 작위를 박탈당하면서 영국 왕실을 둘러싼 존폐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영국 왕실은 여론을 의식해 전례 없이 단호한 조치를 택했지만 군주제 폐지를 주제로 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버킹엄궁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앤드루 왕자의 작위와 칭호, 훈장을 모두 박탈하기 위한 공식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앤드루 왕자는 2003년부터 거주해온 관저 로열로지에서도 나가게 됐다. 영국에서 왕자 작위가 박탈된 건 1919년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을 든 어니스트 아우구스투스 왕자 이후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앤드루 왕자는 미국의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을 통해 알게 된 미성년자 여성을 여러 차례 성착취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는 피해자인 버지니아 주프레가 자신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자 재판 없이 합의했으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의혹을 부인해왔다. 주프레가 지난 4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후 회고록이 공개되면서 앤드루 왕자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보수적인 영국 왕실이 내린 이례적인 결단을 두고 영국 언론은 존폐 위기 앞에 선 왕실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왕실이 작위 박탈을 알리는 성명에서 “앤드루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질책이 필요하다고 판단” “학대 피해자와 생존자들에 대한 깊은 애도와 지지” 등을 명시한 점에 주목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격앙된 대중 정서에 공감하는 이런 대응은 충격적일 만큼 왕실답지 않은 반응이었다”며 “생존하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텔레그래프는 여태 공개된 증거에 비춰보면 “앤드루 왕자의 추문은 왕실의 존폐를 결정하는 순간이 될 수 있었다”고 짚었다. 앤드루 왕자가 전통적으로 국왕의 차남에게 주어지는 ‘요크 공작’ 작위를 포기하겠다고 한 지난달 17일부터 왕자 작위를 박탈당할 때까지 며칠 동안 영국 주요 라디오와 TV에선 황금시간대에 군주제 폐지를 주제로 공개 토론이 벌어졌다. 텔레그래프는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이후로 본 적이 없는 수준의 강도였다고 전했다.

군주제에 대한 영국 내 지지 여론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영국 사회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군주제가 영국에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1983년 86%에서 2024년 51%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률은 같은 기간 3%에서 15%로 높아졌다. 영국 국립사회연구센터의 연구책임자 앨릭스 스콜스는 “군주제에 대한 지지는 통계 집계 이래 최저 수준”이라며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군주제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에 전했다.
BBC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국 정치권에서 왕실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국 의회나 정부에선 왕실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여겨졌는데, 최근 몇 주 사이 앤드루 왕자를 왕위 계승 서열(8위)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됐다. 크리스 브라이언트 영국 기업통상부 통상 담당 장관은 엡스타인 청문회를 진행 중인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가 앤드루 왕자를 소환할 경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요청에 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앤드루 왕자의 전기를 쓴 왕실 작가 나이절 코손은 “왕실의 진짜 위험은 이런 문제들이 의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며 “전통적으로 의회는 왕실 문제를 내버려 뒀지만, 한 번 건드리는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왕실의 앤드루 왕자 작위 박탈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그를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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