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비명(悲鳴)소리] 생지옥의 교육장(4)

2024-10-24

최종두 울산예총 고문(시인, 소설가)의 1980년 삼청교육대 수난기(受難記)를 연재한다. 울산MBC 기자였던 최종두 고문은 1980년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군부대에 끌려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연재 글에는 인권을 짓밟는 ‘삼청교육’의 참상이 생생히 그려져 있고, 1970~80년대 울산의 정치, 경제, 언론, 문화계 비사(祕史)도 엿볼 수 있다. 최 고문은 “1980년대는 찬탈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영혼을 뭉개버리는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전주 같은 목봉을 힘겹게 들게 하면서 서막을 열었다”며 “몽둥이와 총으로 지레 겁을 주며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 제5공화국의 주구들”이라고 술회했다. <편집자 주>

그런데 그날 저녁은 입소 첫날이어서 주번 사관이 각 내무반을 돌고 있었다. 모두가 수양록에 반성문을 쓰느라 여념이 없는데 유독 멍청하게 앉아 있는 배00을 주번 사관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장교는 지휘봉으로 배00을 쿡 찔렀다. “넌, 뭐야. 왜 수양록을 쓰지 않는 거야?” 배00은 히죽이 웃을 뿐이었다. 김00이 큰소리로 대신 대답했다. “이 친구는 글을 쓸 줄 모르는 무식자입니다.”

주번 사관은 아무 말을 못 하고 서 있는 배00을 측은하게 보는 것 같았다. 내무반은 갑자기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제는 1분대뿐이 아닌 소대 전체가 영락없이 단체 기합을 받게 된다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번 사관은 “분대장이 누구야?”하고 물었다. “예, 저올시다.” 내가 바른팔을 들며 내무반이 떠나갈 만큼 큰소리로 대답했다. 주번 사관은 내 큰소리 대답이 흡족했을까 미소를 띠면서 “글을 못 쓰면 본인이 구술하는 대로 분대장이 써 주는 거야. 수양록은 반드시 써야 되는 것이다! 알았어?” 선임 하사에게 지시하고는 나가버렸다.

교도소의 망루처럼 생긴 교육대 망루에서 일제히 사격 소리가 들렸다. 사격은 콩 볶듯 한 소리로 계속되다가 멈춰버렸다. 탈영을 방지하려고 미리 겁을 주는 모양이었다. 배00이 슬그머니 노트를 나에게로 내밀었다. 나는 내 노트에 적은 내용에다 부모님과 형제들, 일가친척,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반드시 새 사람이 되어 가서 놀라게 하겠다는 내용을 적어 다시 배00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후로도 나는 대략 그런 내용, 다시 말해 새 사람이 되어 돌아가서는 이웃이 깜짝 놀라도록 몰라보게 착한 사람이 되어 왔다고 느낄 수 있는 좋은 일만 부지런하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내용으로 배00의 수양록을 쓰게 되었다.

수양록은 대충대충 써서 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들이 잠든 사이 선임 하사는 관물함에 놓인 각자의 수양록을 들어내어 검토를 했다. 진실성이 보이는 수련생과 반성의 기미가 없는 수련생을 갈라서게 하고는 칭찬과 기합으로 결과를 보이는 것이었다.

교육대의 첫날 밤은 이제껏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심란하고 무거운 생각들로 잠자리를 뒤척이게 했다. 긴장과 공포에 싸여 곤한 잠에 떨어진 소대원들보다 먼저 잠에 들지 못한 채 근심스러운 잡념만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있을까? 직장 생활은 이제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할 것이고 불량배들같이 사회악을 저지르고 살아서 그들만이 잡혀와 죽을 고생과 훈련을 받아야 한 탓으로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다 보면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자식들은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볼 것이며 주위 친구들과 이웃들은 뭐라고 수군거릴까? 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이곳에 왔을까? 도무지 풀리지 않고 절망뿐인 수수께끼였다. 교육대의 기간 사병들은 말끝마다 우리들을 사회의 악질분자라 부른다. 광주 사태의 폭도들로 몰아버리면서 전우들을 죽인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 기자였던 내가 광주 사태의 이면에 깔린 전과 후를 전혀 모를 리 없는데 그 소리가 바로 들릴 리 없다. 그럼 누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이렇듯 무지막지한 폭정으로 인간을 개조하려 드는 정부도 정부란 말인가?

침낭 속에 머리까지 파묻고 자는 척하고 있던 나는 내무반을 휘둘러 보았다. 전등 하나만을 밝힌 내무반은 책을 읽지 못할 만큼 어두웠다. 다들 곤한 잠에 빠져 끙끙 앓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잠결에 헛소리를 지르는 소대원들도 있었다. 지옥이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이곳이 지옥이란 생각을 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기상과 동시에 바로 연병장에 모였다. 일조 점호를 마치면 고향 예배를 하게 된다. 고향 쪽을 향해서 1분 동안 묵념을 하면서 부모님과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으니 아무 걱정을 마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마음으로 말해봐!”하면서 지나가는 기간 사병들의 말이 씨알머리없는 헛소리였어도 눈을 감고 고향 쪽을 향해 서기만 해도 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교육대에서는 눈물을 흘릴 사이나 부모형제를 그리워해 볼 시간도 없었다. 1분 1초라도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게 몰아치는 것이 훈련 방식이었다. 깜박하는 사이의 방심은 간혹 대열을 흩뜨리게 되지만 그다음에는 곤봉에 얻어맞는 일만이 있을 뿐이었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싸늘함을 느낄 정도로 기온이 강하하고 있었다. 산으로는 붉은 단풍이 들었고 흙먼지가 자욱한 연병장으로 낙엽이 날아와 깔리고 있었다. 초가을 볕은 초가을 볕대로 햇살 값을 하는 모양이었다. 둘째 날부터 시작한 포복 훈련은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강하게 실시되었고 목봉 체조는 땀에 젖은 몸을 더 지치게 했다.

딱 10분만 허락되는 휴식 시간은 수련생들에게 미처 나누지 못했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 되면 어그적거리며 걸어와 나에게 따라붙는 배00은 만날 때마다 고마운 은혜를 어떻게 해야 갚느냐고 했다. 수양록을 맡아 써주는 데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는 것이었지만 그를 대할 때마다 가슴이 찡하게 되는 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이 사람아! 자네와 내가 같은 처지에 있는데 고마움이 뭐란 말이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느 구석에서도 악함이란 숨을 곳이 없는 순박함뿐이었다. 있다면 어둔함만 묻은 시골 청년일 뿐이었다. “이봐! 배00.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여기서 탈 없이 살아나가야 한다! 알겠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나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교육장에 입소한 지 이제 겨우 이틀째인데 적어도 두 달 동안을 여기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두 달이란 교육 기간을 내가 잡아본 것은 순화교육의 심사위원장이었던 신 중령이 유치장으로 찾아와서 두 달 동안만 죽을힘을 다해 교육을 받으면 또 만날 것이라던 말이 나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루를 넘기기가 괴로운 시간이었고 힘든 고난의 순간들이었다. 우리와 같이 입소한 수련생 중에 벌써 몇 사람이 훈련 중 죽어 나갔다는 소문이 돌았고 죽어봤자 개 한 마리 값을 받으면 잘 받게 되는 보상금이란 소문도 나돌고 있었다. 더구나 훈련 성적이 나쁜 수련생은 다시 제2의 교육장인 교도대로 넘어가 재교육을 받게 된다는 말도 과다하게 나돌고 있어 공포감이 바싹바싹 입술을 태우게 하는 것이었다.

최종두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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