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영의 ‘아는 그림’
저 얼른 물 한잔 마시고 할게요.
바나나의 등장에 경매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나 휴대전화로 찍기 시작하자 경매사가 한마디 합니다. 우리 시간으로 21일 오전 뉴욕 소더비, 80만 달러에서 시작한 경매가가 최고 추정가인 150만 달러를 넘는 데는 1분도 채 안 걸렸습니다. 소더비는 이 작품만큼은 암호화폐도 받았는데, 온라인 응찰자를 포함해 7명이 치열하게 경합한 끝에 620만 달러(약 86억7000만원, 수수료 포함)에 팔렸습니다.
구매자는 암호화폐 트론(TRX) 창립자인 저스틴 선. 그는 “이건 단순히 예술작품이 아닙니다. 예술과 밈,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적 현상”이라며 “앞으로 며칠 동안 이 독특한 예술적 경험의 일부로 바나나를 직접 먹어서 예술사와 대중문화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를 기리겠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카텔란(64)은 2019년 12월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 벽에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를 출품했습니다. ‘코미디언’이란 제목을 붙여 12만 달러(약 1억7000만원)에 내놓았고, 3개 에디션 모두 팔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번 경매에 나와 52배가량 오른 값에 거래됐습니다. 다들 미친 걸까요? 원가 500원짜리 이 바나나, 무엇이 특별한 걸까요.
바나나 한 개, 얼마일까? 12만 달러-예술이라면(영국 가디언)
미친(Bananas)! 미술계가 돌았다-테이프로 붙인 과일 12만 달러에 팔려 (미국 뉴욕 포스트)
12만 달러 바나나에 대한 (마지못한) 변호(미국 뉴욕타임스 만평)
5년 전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의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사람들이 어지간히 화가 났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게 620만 달러(약 86억7000만원)에 팔렸으니 이제 무슨 감탄사를 붙여야 할까요.
‘아는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는 것들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52배 오른 배경
📌28세에 처음 미술관 가 본 이 사람, 어떻게 세계적 예술가 됐나
📌운석 맞은 교황부터 황금 변기까지, ‘현대미술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
📌12억원에서 87억원까지, '바나나 거래'에서 누가 웃었을까.
🚽변기부터 똥 통조림까지, ‘반항적 예술’의 계보
바나나는 일주일도 못 되어 검게 변하는데, 이 5년 묵은 바나나는 왜 비쌀까요? 마이애미에 전시됐던 바나나는 이제 없습니다. 구매자에게는 새 바나나와 테이프, 그리고 작가의 서명이 있는 진품 인증서가 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나나를 며칠 동안 먹어버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바나나와 테이프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관리하기 가장 쉬운 예술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핵심은 바나나가 아닙니다. 바나나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전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진위 인증서입니다. 그런데 그게 86억7000만원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