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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다른 유가족들과 투쟁을 이어갔지만 결국 회사와 합의한다. 혜정은 회사로부터 받은 합의금으로 신도시의 신축 아파트 ‘드림팰리스’를 분양받았다. ‘꿈의 궁전’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아파트는 부실시공이었고, 분양 역시 실패했다. 수도꼭지를 틀면 녹물이 나왔다. 시행사는 “분양이 완료돼야 해결될 문제”라며 수선을 거부했다. 분양완판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혜정은 시행사의 일을 돕는다. 말 그대로 ‘할인분양’을 위한 영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혜정은 함께 농성을 해왔던 또 다른 유가족 수인에게 ‘드림팰리스’를 분양받으라고 권유한다. 수인은 분양가보다 1억원 이상 싼 가격에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수인의 입주를 막았다. 입주자들은 “할인분양으로 집값이 똥 값이 된다”며 아파트 입구에 바리케이트를 세웠다.
2023년 개봉한 영화 ‘드림 팰리스’의 줄거리다. 영화 형식을 빌렸지만 혜정과 수인의 이야기는 실화에 가깝다. 불과 십여 년 전 실제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까지 미쳤다. 경기 침체가 이어졌고, 금리 상승과 주택가격 하락으로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역대 최고수준인 16만가구를 넘어섰다.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2009년 5만87가구까지 쌓였다. 이듬해에는 4만2655가구가 준공 후 미분양으로 남았다.
당시 건설사들은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분양가보다 많게는 35%까지 대대적인 할인분양에 나섰고, 일부 수분양자들은 건설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공식과도 같은 ‘선 분양·후 시공’에서 건설사는 분양에 성공해야 ‘공사비 플러스 알파(이윤)’를 회수할 수 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다음 사업장 수주를 위한 마중물이 된다.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당시 많은 건설사가 폐업하거나 건설업 면허를 자진반납했다. 건설회사 줄도산도 이어졌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 1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12월 말 기준 미분양 주택은 전월 대비 7.7% 증가한 7만173가구로 집계됐다. 다 짓고도 팔리지 않은 준공 후 미분양은 2만1480가구로, 전월 대비 15.2% 늘었다.
전체 미분양 물량의 75.7%는 지방(5만3176가구)에 몰려있다. 지방에서는 대구(8807가구)의 미분양 물량이 가장 많으며 경북(6987가구), 경남(5347가구), 부산(4720가구), 강원(4408가구)의 미분양 물량도 상당한 수준이다. 대구의 2020년 12월 기준 미분양 물량은 280가구에 그쳤지만 불과 4년 새 31배까지 늘어났다.
수도권에서는 경기도의 미분양 물량이 1만2954가구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수도권 전체 미분양 물량의 76.2%에 달하는 규모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가구) 전체 단지가 텅 비어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방에 쌓인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전체의 80.2%인 1만7229가구에 달한다.
이처럼 미분양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국토연구원은 ‘미분양주택 변동원인과 대응방향 연구’ 보고서에서 그 원인으로 “주택의 과잉공급과 높은 금리, 정부 정책이 미분양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시장에 늘어난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넘어오면서 2020~2021년 집 값이 급등했고, 이 때 건설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주택을 과잉공급(인·허가 및 착공)했다. 이후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주택 수요자 및 투자자들의 구매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 미분양으로 이어진 원인이라는 얘기다. 준공 후 미분양은 2021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불과 2년만에 1만 가구 선까지 다시 늘었다.
때문에 지방 건설사를 중심으로 각종 세제 완화 등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론 정부도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건설업계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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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분양유치금’ 내걸며 미분양 해소 노력
정부는 지난해 3월 미분양 해소를 위해 기업구조조정(CR) 리츠를 통해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고, 건설사가 보유 중인 토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매입하는 구제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건설사의 땅을 사줘서 유동성을 확보해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건설사의 신청 저조로 추진 1년 만에 백지화됐다.
전문가들은 “2008년 미분양 사태에 비하면 심각한 수준이라 보기 어렵고, 건설사들이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2008~2009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제대로 된 시장 예측을 하지 않고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무리한 대출을 일으켜 우후죽순으로 주택을 공급한 건설사들을 정부가 나서서 구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실제 공공에서는 미분양을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LH는 지난해 4월부터 공공분양이나 신혼희망타운으로 공급했으나, 미분양된 아파트와 상가를 대상으로 매수자를 구해오면 현금으로 보상하는 ‘분양유치금’까지 내걸고 있다.
LH의 ‘분양유치금 시행 전후 미분양 물량’ 현황자료를 확인한 결과, 공공분양으로 나온 인천영종A37은 전체 447가구 중 147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았지만 LH가 분양유치금을 내걸면서 현재는 완판된 상태다.
양주옥정A4-1 공공분양 역시 전체 1409가구 중 1124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분양에 실패했지만, 분양유치금 시행 이후 지난해 12월31일 기준 단 55가구만 미분양으로 남았다. 신혼희망타운인 울산다운2 A-9는 835가구 모집에 771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으며 외면받았지만 분양유치금 시행 이후 현재 1가구만 미분양으로 남은 상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분양 사태 장기화로 건설사의 폐업 및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시장 상황이 좋을 때 방만하거나 무리하게 경영방침을 취했던 기업들이 위험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로선 지역경제 회복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설사 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겠지만 우량사업장 또는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지원을 집중해야지, 부실기업까지 지원해 살리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결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