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지브리풍’ 인기의 역설

2025-04-18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오픈AI가 최근 출시한 이미지 생성 기능은 인물사진을 유명한 애니메이션풍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지브리 스타일’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동화 같은 풍경, 순수한 감정 표현을 담아내 소셜 미디어 등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AI를 사용해 자신을 토토로의 이웃으로, 하울의 연인처럼 꾸며 프로필 사진으로 걸고 공유한다. 출시 일주일 만에 생성된 이미지 수는 7억 장을 넘었고, 한국에서 챗GPT 신규 가입자 수는 불과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 늘기도 했다. 오픈AI가 지브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브리 철학 핵심은 생명·자연인데

이미지 생성에 막대한 에너지 소비

AI 기술이 자연환경 파괴할 수도

전세계 전력 10% 소비 예측도 나와

지브리 애니메이션 인기의 핵심은 스튜디오 창립자이자 대표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연의 원칙에 대한 인간의 침해가 불러오는 파괴적 결과를 주요 소재로 삼아 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모노노케 히메’는 숲을 훼손하는 인간과 이를 막으려는 신령의 싸움을 통해 인간 문명과 자연의 긴장 관계를 드러냈고,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오염된 지구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과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한 ‘이웃집 토토로’는 시골 마을의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아이들과 감정을 주고받는 살아 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이러한 철학이 중심에 자리 잡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현대 문명 속에서 황폐해진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왔다.

AI로 만든 지브리풍 ‘프사’의 인기는 그래서 더욱 지독한 역설이다. 생명과 자연이 핵심인 지브리의 미학이 엄청난 자연 자원을 소모하는 인공지능 산업에 이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기술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챗GPT에 텍스트 질문을 한 번 던지는 데 필요한 전력은 구글 검색의 약 10배에 달하고, 이미지 하나를 생성할 때 소모되는 전기로는 스마트폰 한 대를 완전히 충전할 수 있다.

글 기반 AI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요구하는 이미지나 영상 생성 AI는 전력 소모량이 텍스트 AI의 40~60배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의 10%를 인공지능이 먹어치울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인공지능 연산은 대부분 데이터센터에서 이뤄지는데, 이들은 ‘전기 먹는 하마’일 뿐만 아니라 ‘물 먹는 고래’이기도 하다. 서버를 24시간 안정적으로 가동하려면 엄청난 양의 냉각수가 필요하다. 일부 연구에서는 챗GPT와 25~50번 대화하는 데 사용되는 냉각수는 500?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GPT-3 모델을 훈련하는 데에는 70만L의 물이 사용됐다는 추정도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에너지 소비가 주로 지리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에 부담을 더 많이 지운다는 점이다.

전기 생산에 따르는 탄소 배출과 데이터센터 인근 지역의 물 부족, 전력 수요 증가가 가져오는 원전 확대 등의 흐름은 모두 지구 환경 악화와 지역 불평등의 악순환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 우루과이에서는 구글이 데이터센터를 위해 하루 수백만 리터의 담수를 사용하려 하자, 식수조차 부족한 지역 주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여 결국 계획이 축소됐다.

데이터센터와 AI 기술이 인류에게 밝은 미래를 열 것이라는 기대에 취해 있을 때, 그 어두운 그림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 삶에 필수적인 자연환경을 갉아먹고 있다.

오픈AI 대표 샘 올트만이‘지브리 스타일로 그려줘’ 명령 하나로 만들어 낸 이미지를 ‘프사’로 올린 이래 인공지능은 전 세계에서 수억 개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테라와트급 전력 소비와 수억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수십만 톤의 담수 소모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먼 곳-전기료가 감당되지 않는 나라, 가뭄이 지속되는 지역, 원전 부근 마을에 낙진처럼 떨어진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신령들이 살고 있는 숲이 파괴되는 것처럼. 지브리는 언제나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를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브리 메시지에 대한 공감이 AI 기술에 의해 오히려 지브리 철학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데 쓰이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AI가 그린 애니메이션은 삶에 대한 모욕”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이제는 모욕을 넘어 삶의 파괴를 걱정할 정도까지 돼 버렸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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