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고 내가 가지 않는 길은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끼지만 직접 경험한 것에 비하면 그 현실감이나 진면목을 알 수는 없는 것 같다.
젊은이는 열정과 패기가 있어 추진력이 좋지만 경험이 미숙하여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은데, 연세가 드신 노인 분들의 인생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참으로 많고 또 그분들의 지혜를 받아들인다면 살아가는데 실수를 하지 않거나 적게 하리라고 본다. 지천명이 넘고 지금까지 살면서 “옛 선현이나 어른들의 말씀에 틀린 것이 없다”라는 것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가령 나이를 먹으니 왜 이리 세월이 빨리 가나? 50대는 시속 50km, 60대는 60km로, 70대는 70km로 간다고 하는 말씀에 공감을 한다.
20대 대학 다닐 때는 그저 친구가 좋아 부모님은 안중에 없었다. 부모님께서 나를 걱정해서 하시는 말씀과 건강에 관한 얘기들은 하나의 잔소리로 들렸고 바라보는 관심사가 당연히 다르기에 세대차이로 치부해 버렸다. 며칠 전 대학생인 아들 녀석이 친구랑 3박 4일 동안 제주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아내에게 듣기는 했으나 제주에서 며칠간 무얼하고 언제 돌아오며 누구랑 가는지 일언반구도 없이 새벽에 일찍 떠난 후 여행기간 동안에도 전화ㆍ문자 하나가 없었다. 딸이 아니고 아들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친구들만 찾는 나이 때문인지, 성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20대를 생각하면 조금 이해는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들 녀석 걱정이 되고 관심이 있어서 하는 얘기인데, 걔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으니 부자간의 관계는 언제 가까워질지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보니 비로소 부모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부모님의 나의 대한 사랑이 지극했음을 뒤늦게 느껴보았다. 하지만 마음만 있을 뿐 제대로 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자식들의 나에 대한 무관심에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식으로 혼내고 탄식을 하는 것이, 맞는 생각인 줄은 모르겠으나 아무튼 요즘 애들은 내가 자랄 때 보다 자유분방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에 대한 사랑은 부모님을 대하는 사랑보다 더 애틋한데 저리 키워 놓고 서운한 점을 느끼는 것이, 내 자신부터 서운함을 느꼈을지 모르는 부모님의 마음을 지금부터라도 헤아리게 된다.
50대 중후반인 나는 아직 양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 주변을 둘러봐도 부모, 장인, 장모가 생존해 있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 다행히 큰 질병으로 간병을 필요로하지는 않지만 감사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살아생전에 효도라는 것이 별거 있나? 자주 찾아보는 것이 도리이고 효도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의 생신과 어버이날, 명절, 합동제삿날에 어김없이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과 대면의 유일한 창구일지 모른다.
지난날 아내는 처가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주 내려가지 않았는데 갱년기인 요즘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최소 2달에 한 번은 친정 부모님을 만나 뵈러 가야 한다고 하면서 지난주 전주의 장모님을 만나 뵙고 왔다. 사위와 함께 찾아와 뵙는 것과 아내 혼자 딸로서 만나는 것, 그리고 며느리랑 함께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과 아들로서 혼자 가서 만날 때 나누는 대화는 다를 수 있다. 며느리와 한 가족이 되었지만 며느리가 있을 때 하지 못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 수년 전에 아내에게 가끔은 혼자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얘기를 했을 때, 1년에 여러 번 부모님을 만나는데 왜 만나러 가느냐며 반색을 했던 적이 있었다. 여자라서 그런 것일까? 아내보다 어머님을 더 챙기는데 기분이 나빴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의 의견에 동조하고 행사일에만 부모님을 만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지금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보고 우리도 자식을 출가시키면 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할 텐데 살아생전에 자꾸 장인, 장모님을 찾아뵈라고 언질을 주었다. 현실적으로 상대방을 이해한다 하면서도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피부로 느끼지 못하며 그 절실함이 떨어지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유방암 수술권위자가 자신의 아내가 유방암을 얻고 나서 환자를 볼 때 세심함을 더 했다거나, 의사 자신이 암을 겪고 나서 환자의 고통과 암을 극복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닌 진심 어린 대화로 환자를 진료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바가 있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경험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깨달은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아쉬움을 토로하기 전에 좀 더 남의 입장에 귀 기울인다면 덜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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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룡 원장
서울 뿌리샘치과의원
<한맥문학> 수필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전)치의신보 집필위원
<2012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