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랙킹’으로 퀴어의 삶을 무대로…‘정상성’을 해체하는 ‘DRAGx남장신사’

2025-11-30

어두운 무대 위, 핀 조명을 받으며 수상쩍은 사람이 등장한다. 몸에 딱 맞는 스트라이프 수트에 머리를 기름지게 넘기고, 분장으로 얼굴을 조각해낸 듯한 그는 드랙킹 ‘아장맨’. “여러분의 성화가 없었더라면, 이런 젠더교란극을 재공연까지 이끌어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자, 그럼 이제 제4회 드랙킹 콘테스트, 드랙 바이 남장신사를 시작합니다!”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지난 21일 막을 올린 는 드랙킹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 퀴어 당사자의 삶을 무대 위에 재현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퀴어는 일반적으로 성소수자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의 규범을 벗어나 그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실제 인물들의 발화와 몸짓을 연극적 형식으로 옮겨와, 기록되지 못한 퀴어의 삶과 퀴어 커뮤니티 역사를 무대 위에 복원한다.

‘드랙’은 태어난 성별과 다른 성별 표현·젠더 이미지를 과장해 공연하는 퍼포먼스 장르이다. 남성이 여성성을 수행하는 드랙퀸은 꽤 알려졌지만, 이 작품은 여성이 남성을 수행하는 드랙킹 형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단순한 남장을 넘어서, 고정된 남성성 규범을 연기하고 비트는 행위를 통해 성별이분법을 흔드는 것이다.

무대에는 레즈비언바 레스보스의 사장 ‘윤김명우’, 1세대 트랜스젠더 ‘색자’,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이자 여성 소방관인 ‘나비’와 그의 자녀인 FTM 바이젠더 ‘봉레오’ 그리고 ‘부치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FTM(Female To Male)은 출생 시 지정 성별은 여성이었으나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를, 바이젠더는 두 가지 성별 정체성을 오가며 경험하는 사람을 뜻한다. 부치는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남성적인’ 외형과 태도, 그리고 성적 역할을 하는 정체성을 말한다. ‘남녀’라는 구분에만 갇혀있다면 설명 자체가 낯선, 하지만 동료 시민으로서 실존하는 이들을 무대에 가시화하는 이 공연은 스스로를 ‘젠더교란극’이라 선언한다.

“헌데 나는 부치인데 여자요? 딱 정하시오. 부치, 여자요, 남자요? … 나는 부치로소이다. 부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요. 가로지르는 존재.” 무대에서 젠더 교란을 가장 유쾌하게 드러내는 것은 ‘부치들’이다. 배우들은 “혼자 왔어요? 몇 살이에요? 여기 재미없죠? 하하하”와 같이 허세 가득한 ‘남성적’ 행동을 연기한다. ‘맨박스’를 패러디한 이 ‘부치박스’에 갇혀 괴로워하던 이들은 ‘부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부치가 어떤 남성을 따라했다는 것이냔 말이야! 나는 유치원생 때부터 머리 짧게 치고, 엄마가 무스 발라서 까리하게 넘겨주지 않으면 유치원 가기 싫다고 울었어! 태어날 때부터 원본이었던 내가 누구를 따라했다는 거야?” 전통적 이성애 관계로는 포섭할 수 없는 부치들의 말다툼을 아장맨이 중재한다. “싸우지마. 수트가 잘 어울리고, 팔 근육이 섹-시-한 부치들이 싸우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이 갑갑한 이분법 세계에 균열을 내는 존재들이잖아.” 젠더 규범을 미끄러지고 횡단하고,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부치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부치 웨이’를 걸어간다.

공연이 유희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에 도달하는 지점은 다양한 퀴어 당사자들의 존재 그 자체다. 60대 레즈비언 명우형(윤김명우)은 가족과의 아픈 기억을 고백하는 한편 한국 레즈비언 신의 역사와 기억을 공유한다. ‘제3의 성’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트랜스젠더 색자는 한여름 ‘닭장차’에서 ‘풍기문란죄’로 수모를 겪은 경험을 풀어놓는다. 선배 세대를 지나 어머니 나비와 ‘아들이자 딸’ 봉레오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이야기는 미래로 이어진다. 특히 ‘퀴어함’을 더하는 것은 봉레오의 무대다. 그는 초연·재연에서는 남자아이돌 노래를 불렀다가, 이번 3연에선 여자아이돌 tripleS를 택해 성 역할을 비트는 동시에 “끝까지 가볼래 포기는 안할래/Girls Never Die 절대 Never Cry”라고 낙관을 노래한다.

공연은 2018년 기획자 문상훈·김다원(아장맨)의 ‘드랙킹 콘테스트’에서 시작됐다. 2021년 3회부터는 연극 형태로 무대화되며 성소수자들의 삶과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심화됐다. 김다원은 “누구나 살다보면 어떤 ‘정상성’에서 빗겨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드랙은 ‘정상사회에서 조금 벗어나도 괜찮아’라고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는 오리지널 공연(~12월3일)에 이어 B 공연(12월7~9일)을 새로 올린다. 문상훈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긍지를 드러내는 ‘퀴어 프라이드’를 이야기하는데, B 공연에선 ‘자긍심있는 존재가 아니어도 괜찮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퀴어와 비퀴어가 공존하는 객석은 무대 바깥에서도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어떤 관객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환호하지만, 누군가는 얼은 표정으로 웃음의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구자혜 연출은 “이 공연에선 퀴어들이 일상에서 소외를 경험하는 것처럼 비퀴어들도 그런 감각을 느끼고 정체성·섹슈얼리티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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