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립미술관 대규모 회고전 후 서울서 개인전
아모레퍼시픽 1층 캐비닛에서 10월 11일까지
'서울,귀여운 여름방학'타이틀로 회화·조각 전시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일본을 대표하는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63)가 내한했다. 이른바 'Japan Pop'의 기수인 무라카미 다카시는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1층의 APMA 캐비닛에서 9월 2일 개막하는 자신의 개인전을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작가는 세계적인 갤러리인 가고시안 주최로 열린 이번 개인전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에 회화와 조각 등 11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무더운 늦더위와 강렬한 전시장 조명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 내내 자신의 시그니처에 해당되는 두꺼운 캐릭터 장식모자를 쓴채 1일 한국 기자들을 만난 무라카미 다카시는 "나의 작품에는 '꽃'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꽃'은 일본 전통회화인 니혼가(日本画)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며 "일본화 전통 기반에 애니메이션, 만화, 오타쿠 문화, '카와이'(kawaii, 귀여움을 추구하는 일본문화) 감성을 혼합했다"고 밝혔다.
작가는 지난 2023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무라카미 좀비' 이후 국내에서 2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에서의 개인전은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 전시 이후 12년 만이다.

이번 전시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모티프인 '꽃'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작가의 아이콘이 돼버린 '활짝 웃는 꽃'은 지난 1995년 처음 등장했다. 올해로 30년이 된 셈이다. '활짝 웃는 꽃'은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창해온 '슈퍼플랫'(Superflat)' 미학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슈퍼플랫'은 만화, 애니메이션, 강박적 성향의 오타쿠 문화, 귀여움을 뜻하는 카와이 감성을 평면 위에 복합적으로 융합한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창한 포스트모던 미술운동이다.
그의 '꽃' 아이콘은 미스터 디오비(Mr. DOB)와 함께 회화, 판화, 조각은 물론 디지털 아트, 영화 등 수많은 매체를 넘나들며 작가의 창작세계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역사적 동시대적 형식과 주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글로벌 미술시장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작품값이 만만치 않음에도 전세계에서 그의 회화와 조각은 많은 컬렉터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작품에서 꽃 모티프는 아이코닉한 초상으로 단독 묘사되거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장대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근래에는 삶의 덧없음을 은유하는 해골(스컬)이 금박으로 바탕에 깔린채 화려한 꽃들이 그려지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으나 숙련된 장인정신과 대중적 매력을 결합해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여전하다. 즉 꽃의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에는 후기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취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도 담겨 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작품은 해골 문양이 새겨진 금박바탕 위로, 만화경에서 쏟아져 나온 듯한 꽃들이 가득 펼쳐진 'Summer Vacation Flowers under the Golden Sky)(2025)다. 가로 3m의 파노라마처럼 화려한 작품이다.
일본 린파 화풍의 화가이자 수집가였던 오가타 코린(1658~1716)의 린파(Rinpa) 화풍을 재해석한 '타치아오이-주'(Tachiaoi-zu)'는 코린의 국화도 병풍을 무라카미 다카시 특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또한 '헬로 플라워리안(Hello Flowerian)'(2024)이라는 제목의 조각 두 점은 무지개색 채색과 금박 마감으로 제작됐는데 꽃 얼굴의 인물 형상을 하고 있다. 귀엽고 순진무구한 형상과는 달리, 전후 일본의 경제적, 사회적 불확실성에 대한 복합적 시선을 담았다고 한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팝 아티스트 GD·블랙핑크·뉴진스 등과 협업하는 등 한국 대중문화와 매우 친숙한 관계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 자신 다종다기한 애니메이션을 잇따라 제작하며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지만 아직 케데헌은 시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자신이 이끄는 작가 스튜디오인 '카이카이 키키' 소속 작가들의 작품으로 부스를 꾸미며 참가한 '프리즈서울 2025'도 둘러볼 계획이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무료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