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로 정치권에서도 관련 입법 논의에 시동을 걸고 있다. 본격적인 '정년 연장' 제도 재설계를 논의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60세 시대는 옛말"…노동시장 논쟁 재점화
(中) '정년 연장' 입법 탄력…"청년층 일자리 함께 유지해야"
(下) '정년 연장' 앞에 선 세대 갈등…"노동시장 구조 재편해야"
【 청년일보 】 정부가 정년 연장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세대 간 갈등의 불씨가 다시금 지펴지고 있다. 고령화 속도에 비해 제도 개편이 늦다는 시각과, 청년층의 일자리 기회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충돌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행법상 공공기관과 기업의 정년은 60세다. 그러나 평균 기대수명이 83세에 달하는 현실에서 퇴직 후 20년 이상을 대비해야 하는 장년층은 "지금도 너무 짧다"며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2030세대는 정년 연장이 곧 청년 일자리 잠식을 의미한다고 보고, 제도 개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을 단순한 연령 상향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노동시장 구조 자체를 재편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과 김대일 서울대 교수는 지난 8일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서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고령층 고용 유지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년 도달 후 근로관계를 종료하고,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해 다시 고용하는 방식이다.
다시 고용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개선하면,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근로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고령층의 계속 근로를 장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삼일 한은 고용연구팀장은 "지난해 기준 약 8.24% 기업이 퇴직 후 재고용제도를 활용하고 있는데, 임금 연공성이 낮고 직무급 직능급을 운영하는 사업체일수록 재고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금체계만 유연하다고 하면, 기업들이 숙련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려는 유인이 충분히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 고령층 계속 근로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 역시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고령 저소득 노동 실태와 정책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노후 소득보장제도를 고려할 때 고령 근로자가 생애 주기별로 필요한 수준의 노동소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은 노동소득 감소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으며, 정년 연장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며 "재고용 역시 일반 재취업에 비해 소득 감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정년 전부터 저소득 일자리에 종사하는 근로자 규모를 줄이고, 노령연금 수급 연령 이후에도 노동소득을 필요로 하는 고령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대응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직업훈련을 큰 폭으로 확대해 고령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시장의 전 분야에서 고령 노동력을 활용하도록 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지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은 "초고령화 사회 진입과 국민연금 수급 시기 지연으로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정년 연장은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청년 실업 문제가 오로지 정년 연장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대규모 공채 중심의 채용이 수시·경력직 중심으로 바뀐 것도 청년 고용난의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이 대변인은 "정부가 인턴 자리 확대나 채용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청년 고용을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며 "정년 연장 때문에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단순히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세대 간 갈등의 실체에 대해 보다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최근 설문조사에서 청년들의 정년 연장 찬성률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부모 세대의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감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청년과 장년층 간 충돌이 있는 것처럼 보도되지만, 이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정년 연장과 청년 고용 간의 관계도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년 연장이 인건비 부담을 유발할 수는 있으나, 그 부담은 사회적 지원 시스템을 통해 분산하고 조정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고용 제도를 확대한다고 해서 세대 간 충돌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재고용 인력이 하청이나 자회사로 이동하면, 그곳에서 근무 중인 청년들과의 경쟁이 또 다른 갈등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노동시장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재고용이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만능 해법처럼 인식되는 것은 오히려 과장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 청년일보=권하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