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들면 다르다"…7만5000 색으로 만드는 에르메스 스카프 매력 [더 하이엔드]

지난가을 가수 지드래곤의 공항 패션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모자 위로 두른 스카프 때문으로, 그의 연출 방식은 사람들 시선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 보통 단정한 차림에 포인트를 주는 조연급 액세서리의 주연급 활약이었다. “스카프는 개방적이고 다채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액세서리다.” 에르메스의 여성 실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실 페세의 말이다. 인터뷰에는 남성 실크 부문 총괄인 크리스토프 과노도 함께 했다.

이들은 에르메스 실크 행사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브리드 드 갤럭시(은하의 마구)’라는 행사로, 브랜드의 대표 실크 스카프 디자인인 ‘브리드 드 갈라(Brides de Gala, 축제용 마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디자인은 1957년 당시 에르메스를 이끌던 로베르 뒤마 회장이 일러스트 작가 위고 그릭카와 함께 완성했다.

“브리드 드 갤럭시 행사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개방적인 매력을 가진 실크의 특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차림새에 변화를 주는 액세서리로서의 스카프 역할과 착용의 즐거움을 조명하는 자리다.” 과노의 말처럼 행사 무대에 오른 공연가들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거나 옷으로 활용하는 등 스카프를 개성적으로 연출했다.

스카프 하나 만드는 데 2년

실크는 가죽 제품과 더불어 에르메스의 중요한 사업 부문이다. 2023년 에르메스 연례 보고서에 의하면 실크의 매출 비중은 7%다.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 가죽 및 마구 제품, 남녀 기성복 및 액세서리, 시계, 향수 및 뷰티, 식기류 등 여러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크 담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남녀로 나뉠 정도로 브랜드 안에서도 중요한 사업이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리옹에 세운 전문 공방에서 만든다. 루이 14세 시절부터 프랑스 실크 무역과 섬유 산업이 번창한 도시다. 현재 공방 직원 수는 800여 명에 이른다. 과노는 “에르메스는 디자인부터 프린팅에 필요한 조판 작업, 원단 직조, 프린팅 및 봉제에 이르기까지 제품 생산 전체 과정을 자체적으로 관리한다”고 말하며 “제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2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했다.

여성 실크 총괄인 페세는 인그레이빙을 실크 제품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로 꼽았다. 아티스트가 그린 디자인을 원단 위로 옮기기 위한 과정이며, 디자인에 들어간 색 가짓수만큼 필름을 만든다. 디자인 하나당 평균 600시간이 걸리는 정교한 작업이다. “아티스트가 그린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장인의 감각이 필요하다”며 “이는 마치 하나의 글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여성용 실크 스카프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3~40개의 컬러(남성 제품은 이보다 적다)를 쓰며, 이 정도 수의 색을 쓰는 브랜드는 에르메스가 유일하다. 사용하는 컬러가 많을수록 프레임이 많이 필요하고, 결국 프린팅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스카프는 감정이 담긴 물건

에르메스는 지금까지 300명 이상의 아티스트와 협업해 실크 제품을 디자인했다. 그들이 평소 다루는 주제와 브랜드 철학 및 디자인 코드의 접점을 찾아 밑그림을 완성한다. “주제 자체가 아닌 브랜드 정신을 스토리로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관건이다.” 페세는 이미 완성된 도안을 사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1937년 첫 스카프가 나온 이후 에르메스는 5만개에 달하는 디자인을 만들었다. 컬러 보관함엔 7만5000개 이상의 색조를 보관하고 있다. 아티스트의 새 아이디어와 지난 90여년 간 보유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르메스는 현재 매년 40개 디자인의 스카프를 내놓는다. 정 사각∙직사각∙삼각∙마름모 형태는 물론 트윌리라 불리는 얇은 스카프까지 형태도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