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올림픽 기념 사업에 보다 집중하고 체육진흥 기금을 확충하고 국민 누구나 건강증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체육시설을 확장하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15일 제14대 서울올림픽 기념 국민체육 진흥공단(이하 체육공단) 이사장에 내정, 20일 취임식을 가질 하형주(62) 체육공단 상임감사는 전화 인터뷰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청사진을 펼쳤다.
하 이사장은 올해가 특이하다. 1984년 LA올림픽 유도 95kg급에서 세계를 제패한지 40주년인 올해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2024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선정된데다 체육공단 이사장자리까지 올라 경사가 겹쳤다.
다음은 하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먼저 체육공단 이사장 선임을 축하합니다. 소감은?
“올해가 LA 올림픽 제패 40주년인 데다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도 선정돼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체육공단 이사장직까지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3개월간 상임감사로서 체육공단 업무를 충실히 파악한 만큼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 현재 체육공단이 벌이고 있는 사업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
“제가 파악한 바로는 ▲기금조성 사업 ▲스포츠 복지 지원 사업 ▲스포츠산업체 지원 사업 ▲올림픽 레거시(유산) 사업 등 네 가지 사업이 있는데 어느 것 한 가지 소홀히 할 수 없는 사업입니다. 특히 경륜, 경정, 스포츠토토로 매년 조성하는 약 2조 원의 국민체육진흥 기금은 한국 체육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으나 합법 사행산업인 만큼 청렴, 투명한 사업 운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강좌 이용권 등 대국민 스포츠 복지 지원 사업과 스포츠산업 성장을 위한 금융상품 지원, 올림픽공원 등 서울올림픽 레거시의 유지 관리 등 사업도 매우 중요합니다.”
-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먼저 체육공단은 성공적으로 치러낸 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겠습니다. 지난 40여 년간 잘 가꾸어 온 송파구 올림픽공원의 각종 조각 등 기념물 관리에 집중하겠습니다. 둘째로 스포츠토토, 경정, 경륜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익금 2조 원 가운데 1조5000억 원은 대한체육회 등에 지원하고 5000억 원을 체육진흥 기금으로 적립해 나갈 계획입니다. 셋째로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체육시설을 정비 또는 확충해 온 국민이 건강증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 이사장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로 엘리트 체육 육성에 어려움이 많다”며 “교육부와 협조, 매년 전국 17개 시도에 있는 체육 중고교에 50억 원씩 850억 원, 한국체대에 150억 원 등 1000억 원을 투자해 영재 교육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하 이사장은 이어 “국민의 스포츠권을 보장해 체육의 가치가 당연시되는 세상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바른 금융상품 지원 위한 내부 통제 강화
- 최근 일부 금융기관에서 내부 직원들의 거액 횡령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체육산업체 등에 대해 금융상품을 지원하는 체육공단도 내부 통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체육공단은 감사실의 협조를 받아 기획조정실이 주도하는 내부 통제 관리체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두 3단계의 내부 통제 과정이 있는데 1단계는 부서 자체의 내부 통제 중요성 교육을, 2단계는 전담 부서인 경영기획팀이 사업 부서 전체의 내부 통제 관련 지표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3단계로는 감사팀이 연간 자체 평가(CSA, Control Self-Assessment)를 통해 부서별 내부 통제 지표 점검 및 관련 이슈를 반영, 지원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日 꺾고 올림픽 우승 가장 기억 남아
-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는 역도의 장미란 문체부 차관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기관의 중책을 맡았는데 화제를 선수 시절 이야기로 돌려볼까요.
“1981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제 체급인 95kg이하급에서는 일본 선수에 져 은메달에 머물렀습니다만 체급 제한이 없는 무제한급에서는 일본 선수를 꺾고 우승했는데 한국 유도가 아시아 무대 무제한급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제 나이 19살로 제 체급에서 은메달 딴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당시 서재균 감독이 숙소에서 제 뺨을 때리며 ‘정신 차려라. 네 체급이 95kg 이하이지만 100kg 이상 선수들이 나오는 무제한급에 도전해 보라’고 하여 이를 악물고 나가 싸워 금메달을 땄습니다. 모두 돌아가셨지만, 당시 선수단을 이끈 송학준 단장과 서재균 감독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 유도는 일본 유도만 만나면 주눅이 들어 힘을 쓰지 못하고 주저앉은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형주가 일본의 무제한급 선수를 꺾고 우승하면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으니 국내 언론이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었다.
하 이사장은 “1984년 LA올림픽 우승에는 돌아가신 박순진 감독님, 장은경 코치님의 지도가 큰 힘이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5 세계선수권 일본에 패배…1년 뒤 설욕
- 이후 1984년 LA 올림픽, 1985년 서울 세계유도선수권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 등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는데요.
“맞습니다. 한국선수단 기수로 개막식 때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던 LA 올림픽은 겁 없이 도전한 첫 올림픽이었습니다. 8강전에서 일본의 미하라 마사토를 절반 2개(한판)로 꺾으면서 우승을 확신했습니다. 4강전에서 1980년 올림픽 우승자인 서독의 군터 노이로이터, 결승에서 브라질의 더글러스 비에이라를 각각 누르고 우승했지요. 그러나 1985년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결승에서 일본의 스가이 히토시를 가볍게 보았다가 빗당겨치기 한판을 허용했습니다. 다행히 1986년 88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는 스가이를 모두걸기로 공략, 1년 전 패배를 설욕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올림픽에서는 1회전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로베르토 판 데 발레(벨기에)에게 가로누르기 한판을 내줘 탈락했습니다. 자만이 원인이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은 1985년 고베유니버시아드 결승에서 저에게 졌던 아우렐리우 미게우(브라질)가 우승해 더욱 아쉬웠습니다.”
화끈한 다리들어메치기가 일품이었던 하 감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북한 여자유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계순희와 함께 성화 공동점화자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마라톤의 황영조 등 5명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등 한국 체육의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다. 재작년 슬하의 1남 1녀가 그해에 모두 결혼, 손주까지 봤다.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세례명은 미카엘.
이종세(대한언론인회 총괄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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