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힘

2024-12-18

초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간혹 TV에서 계급장이 번쩍거리는 제복 차림의 경찰이 무서운 표정으로 뭔가를 발표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면 한동안 해가 짧은 겨울이 된 듯 동네는 어두워졌고, 이웃 세탁소나 인쇄소 주인도 혹시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도 그런 것이 TV에서는 대공 수사물이 인기리에 방영됐고, 곳곳에 붙어 있는 “수상하면 신고하라”는 간판은 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역산해 보니 그때의 일이 훗날 조작으로 판명 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었음을 알게 됐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고등학생 때 광주사태라는 이름으로 접했다.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으니 서울에서는 온갖 소문만 난무했다. 12.12. 사태로 불렸던 군사 반란 역시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국회 청문회와 수사를 통해 진상이 알려지게 됐다.

지난 12월 3일 밤, 일찍 잠이 들었는데 둘째 녀석이 흥분한 상태로 귀가해 계엄이 선포됐다고 소리쳐 일어났다. TV에서 현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처음 경험했을 아들과 달리 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분했다.

몇 시간 만에 계엄은 해제됐고, 이후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계엄 발표 후 특전사 군인보다 먼저 국회로 달려간 국회의원과 수많은 시민의 용기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그날 군인들의 소극적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눈에도 첨단 장비를 갖춘 최정예 대원임을 알 수 있는 그들이 맨손의 시민들에게 힘없이 밀리는 것을 보면서 상황이 길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TV를 통해 똑똑히 목격했던 그날의 상황과 1980년 광주는 무엇이 달랐기에 그토록 다른 결과가 되었을까? 나는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영화 <서울의 봄>을 들고 싶다. 천만 관객이 들었던 이 영화를 보면서, 이미 과거지사인데도 영화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 상황을 막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군사 반란으로 한때 권력과 부를 차지했지만, 법정과 역사의 심판으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쓴 이들의 부끄러운 역사가 영화를 통해 재현되었다. 그 시절을 살지 않았던 젊은 세대, 그 시대를 살았어도 전모를 알지 못했던 거의 모든 세대에 영화는 엄청난 학습 효과를 끼쳤다. 국회 진입 작전에 참여했던 군인 중 상당수는 이 영화를 봤을 것이고 자신들이 훗날, 아니 며칠 후 어떤 자리에 있게 될 것인지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주일도 채 되지 못해 작전을 이끌었던 장군들이 눈물을 참으며 그날 일을 후회하는 장면이 방송을 통해 중계됐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힘이 있다.

무장한 군인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휴대폰 카메라가 일촉즉발의 상황을 동시에 촬영하고 실황 중계했다. 1979년과 1980년, 서울과 광주에서 무장 군인들이 시내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시민을 향해 발포했어도 신문과 방송만 장악하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

이번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세계의 이목이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광장에 나왔던 사람뿐만 아니라 TV와 휴대폰을 통해 사건의 발생부터 전 과정을 실시간 중계로 경험한 이들에게 그날 밤의 일은 비가역적인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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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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