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당에서]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평정심’ 잃는다면…

2024-12-17

12·3 계엄 사태를 보며

중국 역대 미녀로 꼽히는 포사

주나라 유왕, 그녀 마음 얻고자

여산에 수시로 거짓 봉화 피워

정작 외적이 쳐들어 왔을때

봉화 피워도 믿는 사람 없어

대국민담화 반복한 尹대통령

국민 생각 무시한 채 “믿어달라”

오히려 탄핵안 가결 부추긴 꼴

자신의 안위·이익만 생각한다면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말을 누구나 입에 올리곤 한다.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본인도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돈과 권력, 명예, 미추(美醜), 시비(是非) 등 평정심을 잃게 하는 것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다. 어떤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을 망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평정심을 잃은, 흐려진 마음에 빠져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평정심, 맑은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지 누구나 알 것이다. 소위 ‘확증편향’이 심한 사람이나 평정심을 일기 쉬운 성품의 사람은 평정심에서 판단을 하기가 더욱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보면서도 새삼 이를 확인하며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지난 3일 밤에 TV를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화면이 바뀌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긴급담화 발표 생중계 장면이 나왔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 일거에 척결’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등 납득할 수 없는 문구를 나열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십시요”라며 끝을 맺었다.

처음 느껴보는 복잡한 감정이 오고갔다. 마른하늘에 치는 날벼락을 맞으면 비슷한 느낌일까. 장난이 아님은 분명할 것인데, 담화 내용을 납득할 수 없으니 황당하고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감정과 더불어 바로 향후 이 나라가 얼마나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게 될 지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는 가운데 ‘기우’라는 말에 갑자기 떠올랐다. 기우(杞憂)는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열자(列子)’에 실린 아래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고대 중국의 기(杞)나라에 살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먹고 자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위해 주위의 한 사람이 하늘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해와 달, 별이 떨어지지 않고, 땅 역시 기운이 뭉쳐져 있어 꺼지지 않는다는 걸 설명해 주었다. 그 사람은 비로소 안심하게 되었다.

이 기나라 사람은 사실을 알고는 쓸데없는 걱정, 망상을 털어버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어땠는가.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니 계엄이 해제됐다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일단 걱정이 조금은 가셔지는 듯했다. 계엄군이 국회를 봉쇄하고 침탈하는 급박하고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 일반 국민과 국회의원 등의 절박한 대응으로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할 수 있었고(참석 국회의원 190명 전원 찬성), 이후 3시간 30분 정도 지난 4일 4시 30분쯤 대통령은 계엄 해제 담화를 발표했다. 계엄 선포 6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국민을 분노케 하는, 비상계엄 선포 전후의 과정과 상황 전개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대통령실이 이번 계엄은 야당에 대해 경고만 하려던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계엄 선포 담화를 접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이 또한 황당하기 그지없는 뉴스였다. 경고만 하기 위해 군과 경찰을 동원해 비상계엄을 선포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무위원 모두가 계엄 선포를 반대했는데도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접지 않고 밀어붙였던 모양이다.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12월 7일 오전, 비상계엄 선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여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표결 직전 집단 퇴장하는 방식으로 표결에 불참하면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대통령은 이후 사과 담화 내용에 부합하는 언행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두 번째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둔 지난 12일 다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광란의 칼춤’ 등 극단적 언사를 쓰면서 29분 동안 많은 내용을 언급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사는, 대통령이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들뿐이었다. 그 내용과 배치되는, 관련자들의 진술 등에 의해 드러난 사실들에 대한 언급은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았다. 황당한 궤변으로 들리는 이 담화는 야당 정치인은 물론이고 여당 국회의원도 극우세력 봉기를 부추기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담화에서 대통령은 계엄 목적은 ‘국민들에게 거대 야당의 빈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었다 말했다. 그리고 또 “저의 뜨거운 충정만큼은 믿어주십시요”라고 말했다.

대통령 자리에 있는 사람이 왜 이렇게 보통 사람, 상식적인 국민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의 담화 발표를 반복할까. 그러면서 계속 ‘믿어 달라’고 강조했다.

◇제후를 희롱한 거짓 봉화

중국 역대 미녀 중 한 사람인 포사(褒似)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봉화희제후(烽火戱諸侯: 봉화로 제후들을 희롱하다)’, ‘천금매소(千金買笑: 천금으로 웃음을 사다)’라는 말이 유래한 이야기다.

주(周)나라 유왕(幽王)은 포인(褒人)이 바친 여자인, 가늘고 긴 허리의 포사를 총애했다. 그런데 포사는 평소 웃는 일이 없었다. 유왕은 포사의 웃음을 얻기 위한 온갖 궁리를 했고, 포사를 웃게 하는 사람에게 황금 천 냥을 주겠다며 현상금도 내걸었다.

현상금을 타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다양한 제안을 올렸지만, 포사를 웃게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적군이 쳐들어왔음을 알리는 여산(驪山)의 봉화가 피어올랐다. 제후들이 전국 곳곳에서 급히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는데, 정작 적군의 침략은 없었다. 그런데 포사가 이 어이없는 상황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본 유왕은 너무 기뻐했고, 이후 포사를 웃기기 위해 봉화를 수시로 올리게 했다. 거짓 봉화가 반복되던 중 외적(견융)이 진짜로 쳐들어 왔고, 이때 봉화가 피어올랐지만 달려온 제후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유왕은 여산에서 적에게 피살되고, 포사는 포로가 되고 말았다.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다.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표결에 참여했고, 204명이 찬성했다. 믿어달라며 호소했던 지난 12일 담화는 오히려 머뭇거리던 여당 국회의원들마저도 더욱 믿을 수 없게 만든 모양이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바로 대통령은 또 담화를 발표했다. 여기서도 여전히 국민의 마음은 읽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 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만 순간까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담화를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앞으로도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이 심화될 것인데, 많은 이들은 대통령이 지금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대다수 국민의 인식과 동떨어진 언행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맑은 마음을 되찾아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언행을 보여줄 기회는 앞으로 계속 있을 것인데,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짓 봉화로 제후들의 신뢰를 잃었듯이, 국민의 생각을 무시한 담화 반복은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어떤 과정과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12·3계엄 사태 진행 과정을 보며 극좌나 극우가 아닌 상식적인 일반 국민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점은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여야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는 특히 자신의 안위나 이익만 생각하거나 자신의 인식 틀에 갇혀 국민의 소리, 양심의 소리를 계속 듣지 못한다면 결국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평정심을 잃지 말기 바란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잘못된 언행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조심할 일이다. 글·

사진=김봉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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