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잃게 될라 ‘별 헤는 밤’

2025-01-19

사막 깊숙이 자리잡은 천문대

해발 2635m 위치 ‘광해’ 적어

전 세계서 별 보기 가장 좋아

미국 기업 칠레 현지 자회사

인공조명·먼지·난기류 뿜는

축구장 4200개 규모 공장 계획

16개국 운영 유럽남방천문대

“청정하늘 위협, 관측력 저하”

이례적 성명 내고 이전 촉구

숨이 턱 막힌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의 모습을 설명할 언어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빨갛고, 노랗고, 하얀 빛을 뿜는 은하수의 아름다움은 그만큼 압도적이다. 따지고 보면 별과 가스, 먼지의 집합체일 뿐이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은하수는 예술 작품이 된다. 이 사진을 찍은 곳은 칠레 북부에 있는 아타카마 사막의 파라날 천문대 상공이다. 파라날 천문대는 해발 2635m 산 위에 서 있는데, 이곳은 전 세계에서 별을 보기 가장 좋다. ‘광해(光害)’가 지극히 적은 곳이라는 뜻이다.

광해가 뭘까. 지상에서 발산되는 강력한 인공조명 때문에 하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을 볼 수 없게 되는 현상이다. 천문 연구에는 가장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자동차 전조등 앞에서 반딧불이를 보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국내에도 강원 안반데기처럼 주변이 어두워 별 관측 명소로 유명한 곳이 있기는 하지만, 파라날 천문대 주변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수준의 광해 해방 지역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파라날 천문대 위 아름다운 별빛을 인공조명이 삼킬 가능성이 대두됐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최정상급 별 관측 능력 보유

1999년 세워진 파라날 천문대에는 동체 내부에 지름 8.2m짜리 주경(거울)을 갖춘 ‘거대 망원경(VLT)’ 4기가 갖춰져 있다. VLT는 파라날 천문대의 핵심 장비인데, 이유는 주경 크기가 세계 최정상급이라서다. 주경이 크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많이 모을 수 있다. 원거리 천체 관측이 쉬워진다. 다른 망원경으로는 잡아내기 어려웠던 우주 현상을 관측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그런 성과가 나왔다.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이 파라날 천문대를 통해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포착한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현재는 VLT보다 큰 ‘초대형 망원경(ELT)’을 파라날 천문대에 추가로 들여놓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이런 고성능 망원경이 하필 파라날 천문대로 모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23년 영국 왕립천문학회 발표를 보면 전 세계 주요 천문대 28곳 가운데 파라날 천문대는 광해가 가장 적은 곳으로 꼽혔다. 사막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인구 밀도가 적고, 이 때문에 공장이나 주택, 상점, 도로 등에서 방출되는 인공조명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한마디로 밤하늘이 칠흑같이 어둡다. 망원경으로 약한 별빛을 잡아내기에 딱 좋다는 뜻이다.

산업단지 생기면 ‘치명상’ 불가피

하지만 최근 천문학계에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엄청나게 강한 ‘인공조명 덩어리’가 파라날 천문대 지척에 생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파라날 천문대를 운영하는 유럽남방천문대(ESO)는 이달 초 공식 발표자료를 통해 “지난달 말 미국 전력기업의 칠레 현지 자회사인 AES 안데스가 대규모 산업단지 건설안을 공개했다”며 “이 계획은 파라날 천문대 위 청정 하늘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난기류, 특히 광해가 천문 관측 능력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산업단지는 파라날 천문대에서 5~11㎞ 떨어진 곳에 건설될 예정이다. 천체 관측을 방해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파라날 천문대를 비롯한 고성능 망원경은 도시 불빛과 대개 100㎞ 이상 떨어져 있다. 산업단지 규모는 축구장 4200개와 맞먹는 3000㏊(헥타르)에 이른다. 암모니아와 수소 생산 공장, 발전소 등이 빽빽이 들어선다. 이런 대규모 산업단지는 건설 과정은 물론 완공되고 나서도 강한 인공조명을 뿜는다.

파라날 천문대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16개국이 참여한 ESO가 운영하지만, 소재지인 칠레 정부와도 운영 과정에서 협의를 한다. ESO는 “어두운 하늘은 국경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자연 유산”이라며 “산업단지 건설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과학계가 지역 개발 등 사회적 문제가 얽힌 현안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일은 드물다. 인공조명 발생으로 인한 파라날 천문대의 기능 저하가 매우 심각한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칠레 정부와 산업단지 건설 기업인 AES 안데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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