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인텔의 독주와 AMD의 도전
2000년대 초반, 위기의 인텔·혁신의 AMD
2006년 ~ 2016년, 인텔 장기 집권·AMD 침체
2017년 ~ 2020년, AMD의 부활과 인텔의 하락세

[디지털포스트(PC사랑)=임병선 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라는 말이 있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무리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강이나 산도 그 모습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결국 변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는 뜻을 지녔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이한 PC사랑도 30년의 역사 속에서 3번이나 강산의 변화를 맞았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사무실도 2번이나 옮겼고 소속된 기자들도 모두 바뀌었다. 2011년부터 약 15년 동안 PC사랑의 역사와 함께한 기자에게도 PC사랑의 30주년은 감회가 남다르다. 즐거웠던 일도 있었지만,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이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그래서 30주년 창간기획으로 30년간 변해온 CPU 시장에 대해 다뤄볼까 한다. CPU 시장도 항상 순탄하진 않았고, 굴곡이 상당히 많았다. 굵직한 사건 기준으로 30년간 CPU 시장을 분석해 보겠다.
1990년대
인텔의 독주와 AMD의 도전
1990년대는 그야말로 인텔 천하였다. 인텔은 펜티엄(Pentium, P5 아키텍처)을 출시하며 PC 시장의 표준을 제시했다. 펜티엄은 60MHz에서 66MHz 클럭 속도를 자랑하며, 당시 IBM PC 호환 기종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부터 ‘펜티엄’이라는 이름은 CPU의 대명사처럼 인식됐으며, 인텔은 CPU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PC사랑이 창간했던 1995년에는 펜티엄 프로(Pentium Pro)를 발표했는데, 주로 서버와 워크스테이션을 목표로 한 CPU였다. 펜티엄 프로는 기존 펜티엄 CPU보다 성능은 크게 개선됐지만, 소비자용으로는 그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고급 사용자들만 사용했다.
이후 펜티엄 2(Pentium II)와 펜티엄 3(Pentium III)가 출시되면서 멀티미디어와 3D 그래픽 성능 향상에 중점을 둔 CPU들이 시장에 등장했다. 특히 펜티엄 3는 SSE라는 새로운 명령어 세트를 도입해 멀티미디어와 벤치마크 성능을 대폭 향상하기 시작했다.
한편, 초창기 AMD는 인텔의 클론 CPU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1999년 애슬론(Athlon)을 출시하면서 인텔에 맞설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특히 애슬론은 Socket A와 같은 기술을 도입해 인텔 펜티엄 3보다 성능에서 앞섰고, 2000년대 초반에는 인텔을 위협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위기의 인텔, 혁신의 AMD
2000년대 초반, 인텔은 펜티엄 4(Pentium 4)를 선보였다. 펜티엄 4는 NetBurst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높은 클럭 속도를 목표로 한 고성능 CPU다. 인텔은 3.8GHz까지 클럭 속도를 올렸지만, 비효율적인 파이프라인과 발열 문제로 성능과 전력 효율성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펜티엄 4는 수많은 클럭 속도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비효율적인 파이프라인 때문에 성능 향상은 제한적이었다.
이어 인텔은 아이태니엄(Itanium)이라는 64비트 아키텍처를 출시했지만, 호환성 문제와 제한된 소프트웨어 지원으로 거듭 실패했다. 기술적 한계에 직면한 인텔은 반전에 실패하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 AMD는 2003년 애슬론 64(Athlon 64)를 발표하며, x86-64 아키텍처를 최초로 상용화했다. 기존 32비트 연산에서 64비트 연산으로 넘어간 순간이었으며, AMD64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AMD64는 메모리 컨트롤러 내장으로 메모리 대역폭 문제를 해결했고, 그로 인해 성능과 전력 효율성에서 큰 개선을 끌어냈다.
이어서 애슬론 64 X2(Athlon 64 X2)를 발표하며 듀얼코어 시대까지 열었다. 2005년 옵테론(Opteron)은 서버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AMD는 인텔에 비해 성능 면에서 한발 앞서 나가게 됐다.


2006년 ~ 2016년
인텔 장기 집권, AMD의 침체
2006년부터 2016년까지는 그야말로 인텔의 장기 집권 체제였다. 인텔은 코어(Core) 아키텍처를 발표하며 펜티엄 4의 한계를 극복하고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킨 코어 2 듀오(Core 2 Duo)와 코어 2 쿼드(Core 2 Quad)를 출시했다. 고성능과 낮은 전력 소비로 뛰어난 성과를 냈고, 이때부터 소비자 시장에 듀얼코어와 쿼드코어가 대중화됐다. 또한, AMD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고, 인텔은 다시 CPU 시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인텔은 2008년에 네할렘(Nehalem) 아키텍처를 선보였다. 이 아키텍처는 메모리 컨트롤러 내장과 하이퍼스레딩 기술을 지원해 멀티태스킹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특히 LGA1366 소켓 기반인 코어 i7(Core i7)는 데스크톱과 서버 모두에서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인텔은 다음 세대는 미세공정(틱)과 그다음 세대는 아키텍처 혁신(톡)을 하는 ‘틱톡 전략’을 통해 14nm 공정까지 계속 성능을 계속 높여갔다.
AMD는 이 시기에 가장 암울한 성적표를 기록했다. 듀얼 코어 시대를 연 애슬론 64 X2는 CPU 시장에서 큰 활약을 했지만, 이후 불도저(Bulldozer) 아키텍처가 큰 실패를 겪으면서 계속 수렁에 빠졌다. 불도저 아키텍처는 모듈식 구조를 채택했으나 성능과 발열 문제로 시장에서 외면받았고 2011년부터 지속적인 적자와 시장 점유율이 계속 떨어졌다.


2017년 ~ 2020년
AMD의 부활과 인텔의 하락세
2017년, CPU 시장에서 외면받았던 AMD는 Zen 아키텍처 기반의 라이젠(Ryzen)을 선보이면서 부활을 알렸다. Zen 아키텍처는 14nm 공정을 기반으로, 성능과 효율성 모두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특히 라이젠 7 1800X는 인텔의 코어 i7의 성능을 제치면서 멀티코어 성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AMD는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큰 경쟁력을 갖췄으며,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다.
2019년 선보인 Zen 2 아키텍처는 7nm 공정을 적용해 IPC(Instructions Per Clock)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고, EPYC Rome은 서버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Zen 3 아키텍처는 단일 스레드 성능에서도 인텔을 추월하며, 라이젠 5000 시리즈는 뛰어난 성능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때부터는 호환성 관련 이슈도 잠재우면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갔다.
반면, 인텔은 5세대 코어인 브로드웰(Broadwell)에서 14nm 공정을 처음으로 도입했지만, 11세대인 로켓레이크(Rocket Lake)에서도 여전히 14nm 공정을 사용했다. 이렇듯 10nm 공정을 5년 이상 지연시키면서 성능 향상과 효율성 개선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텔은 모바일 프로세서 쪽에서 10세대 코어인 아이스레이크(Ice Lake)부터 10nm 공정을 적용했지만, 데스크톱 프로세서는 계속 14nm 공정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21년 ~ 2023년
다극화되는 경쟁
2021년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PC 시장에도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특히 재택근무·온라인 수업 증가 덕분에 PC 구매가 폭등하면서 CPU 수요도 최고점을 찍었다. 인텔은 여전히 CPU 시장 1위를 지켰지만, AMD가 라이젠 시리즈의 경쟁력으로 데스크톱과 서버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 나갔다. 애플은 M1 칩으로 인텔에서 독립해 ARM 기반 맥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열면서 CPU 시장 구조에 큰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나 2022년, 코로나 엔데믹이 되면서 PC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재고가 과잉되면서 PC 출하량이 많이 감소했다. 인텔과 AMD 모두 출하량 감소를 겪었고, PC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2023년까지도 PC 시장은 둔화가 이어졌지만, 서버 부문에서 AMD EPYC의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인텔은 여전히 전체 점유율 1위였으나, 서버와 데스크톱 고가 구간에서 AMD 약진이 두드러졌다. 애플도 M2, M3 칩을 내놓으며 고효율·고성능 이미지를 강화했고, 독자적인 맥의 ARM 진영으로 안정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2024년 ~ 2025년
AI CPU 등장
2024년 들어 PC 수요가 다시 조금씩 회복됐다. 윈도우 10 지원 종료 임박에 따라 기업과 개인의 교체 수요가 살아났고, 여기에 AI라는 이슈까지 맞물렸다. 이에 인텔과 AMD, 퀄컴 모두 AI 연산에 특화된 AI CPU를 선보였다. 인텔은 코어 울트라, AMD는 라이젠 AI, 퀄컴은 X Elite로, CPU에 NPU(신경망 처리 장치)를 탑재하기 시작됐다.
2025년부터 CPU 시장의 반등이 본격화했다. 윈도우 10 지원 종료가 10월에 이루어지면서 대규모 교체 수요가 발생하고, AI 기능이 내장된 PC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됐다. 인텔은 여전히 CPU 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 있었지만, AMD는 데스크톱과 서버의 프리미엄 구간에서 점유율을 넓혀나갔다. 특히 서버 부문에서 그동안 존재감이 없었던 AMD EPYC이 27% 이상 출하량 점유율을 확보했고, 인텔도 Xeon 6 시리즈를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ARM 진영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성장했다. 맥은 이미 ARM 기반으로 고정된 생태계를 구축했고,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AWS Graviton4와 Ampere 칩이 점유율을 확대했다. 윈도우 온 ARM도 2025년 들어 네이티브 앱 지원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용성이 개선돼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미래 승자, 누가 될 것인가?
지난 30년간 인텔은 펜티엄과 코어 시리즈를 통해 CPU 시장을 지배했으나, AMD가 라이젠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고,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또한, ARM과 애플 실리콘은 모바일부터 서버, 데스크톱까지 x86 아키텍처를 위협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인텔과 AMD의 경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며, ARM 기반의 CPU까지 크게 삼파전이 진행 중이다.
한때는 인텔이 절대적인 위치였지만,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AI CPU라는 이슈까지 더해져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더더욱 알 수 없어졌다. 하지만 CPU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고 단순한 코어 수나 클럭 경쟁을 떠나 AI 가속, 전력/열 제어, 통합 설계 등이 핵심 경쟁 요소가 될 것이다. 과연 10년 후에는 누가 웃고 있을 것인지 기대된다.
연도별 주요 사건
1995 : 인텔 펜티엄 프로 출시, 현대 CPU 구조 토대
1997 : AMD K6, 인텔 펜티엄 2 경쟁
1999 : AMD 애슬론, 최초 1GHz 클럭 달성
2000 : 인텔 펜티엄 4 출시, 클럭 경쟁 본격화
2003 : AMD 애슬론 64 등장 (x86-64, 64비트 혁명)
2005 : 인텔 펜티엄 D & AMD 애슬론 X2 출시, 멀티코어 시작
2006 : 인텔 코어 시리즈 출시, 성능·효율 혁신
2008 : 인텔 코어 i7(네할렘), 메모리 컨트롤러 내장
2011 : 인텔 샌디 브릿지 성공, AMD 불도저 실패
2013~15 : 인텔 하스웰/스카이레이크 출시 시장 장악, AMD 침체
2017 : AMD 라이젠 등장
2018~19 : AMD 스레드리퍼, 서버 시장 점유율 확대
2020 : 애플 M1(ARM CPU) 등장
2021 : 인텔 엘더 레이크, 최초 하이브리드 구조 데스크톱 CPU
2023 : AMD Zen 4 & 인텔 메테오 레이크, AI 연산 특화 NPU 탑재
2025 : CPU에 AI 엔진(NPU) 내장 보편화, ARM·RISC-V 도전 심화
종합 비교 요약
인텔
1990~2015년 : 절대 강자 → 틱톡 전략으로 기술 주도
2015~2020년 : 공정 지연·혁신 정체 → AMD와 ARM에 추격당함
2020년 이후 : 하이브리드 구조, AI NPU로 반격 중
AMD
1999~2005년 : 애슬론, 애슬론 64로 인텔 추격 성공
2011~2016년 : 불도저 실패 → 시장 몰락
2017~현재 : 라이젠·EPYC로 부활, 서버·PC 양쪽에서 점유율 확대
ARM/애플
1990~2000년대 : 임베디드·저전력 기기 용도
2007~2016년 : 스마트폰 SoC로 세계 장악
2020년 이후 : 애플 M1 계열로 PC 시장 진입, x86과 경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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