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의 탄생

1941년 봄, 뉴욕의 웨스트 42가 맥그로힐 건물에 19세 청년 스탠리 마틴 리버(사진)가 도착했다. 그는 대번 발탁되어 조 사이먼과 잭 커비가 그해 3월 1일 시작한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스탠리 리버는 캡틴 아메리카의 세 번째 에피소드, ‘캡틴 아메리카, 배반자의 복수를 저지하다!’의 스토리를 쓰면서 ‘스탠 리’라는 필명을 지었다. 마블 유니버스의 크리에이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첫 등장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미국은 관망하고 있었지만 악이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정의로운 싸움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커져갔다.

성조기를 모티브로 한 옷을 입고 나치를 때려잡는 캡틴 아메리카는 그 시대적 분위기의 산물이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폭격했다. 본토를 타격 당한 미국은 전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갓 스무살이 된 스탠 리는 징집 대상이었다. 그는 스스로 캡틴 아메리카가 되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대공황을 겪으며 성장한 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스탠 리의 또래 모두가 그랬다. 이른바 ‘가장 위대한 세대’라 불리는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미국을 세계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난 2월 28일,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주한중국대사관과 경찰서에 난입해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안모 씨가 검찰에 송치됐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J. D. 밴스 부통령은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러시아와 휴전하고 미국에 광물을 내놓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캡틴 아메리카는 사라지고 ‘빌런’만 가득한 세상이 된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