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림, 여론 수렴, 효과 검증' 없이 밀고가는 고속철 통합 [뉴스분석]

2025-12-08

국토교통부는 8일 고속철도 통합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그 취지를 고속열차 좌석 부족으로 인한 국민 불편과 철도안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고속철 통합은 대선 공약이다.

내년 3월부터 KTX와 SRT(수서고속철도) 교차 운행을 통해 좌석 부족이 심각한 수서역 등에 KTX를 투입하고, 두 열차 구분 없이 연결 운행하고, 기종점 구분 없이 서울역과 수서역을 자유롭게 운행토록 해 좌석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또 코레일과 SR로 이원화된 철도안전 관리체계를 내년 말까지 하나로 합치면 안전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취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선 SRT는 물론이고 KTX도 여유 차량이 거의 없어 수서역에 KTX를 넣게 되면 SRT 노선에는 운행 편이 일부 늘어나지만, 반대로 서울역·용산역 등엔 KTX 운행이 감소해 전체적으로는 좌석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교차 운영 초기에는 안전상 이유로 수서역에 KTX를 많이 투입할 수도 없는 데다 SRT 역시 차량 부족 탓에 서울역이나 용산역 운행이 극히 제한적일 거란 예상이다.

현재도 관제와 선로 유지보수, 차량 정비를 코레일이 모두 담당하는 상황에서 SR을 통합한다고 해서 특별히 안전문제가 나아질 요인이 많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SRT 차량도 코레일이 정비를 맡고 있다.

또 철도노조와 코레일은 고속철 통합 운영 시 1만 6000석 추가 공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국토부 차원에서 실현가능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이뤄진 적이 없다.

코레일과 SR에 따르면 하루 평균 부족한 좌석은 KTX가 6만석, SRT가 2만 5000석가량이다. 통합으로 설령 최대 1만 6000석이 추가 공급된다고 해도 부족분의 채 20%도 안 된다.

결국 좌석난은 고속철 통합이 아니라 열차 추가 도입과 오송~평택 등 병목구간 해소를 통해서만 전면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좌석난 해소가 통합의 명분이 되기엔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토부는 또 고속철도 통합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코레일·SR 노사, 소비자 단체 등이 참여한 간담회를 거치고, 각계 전문가 의견도 폭넓게 수렴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코레일과 SR 노사를 제외하면 7~8명가량의 전문가, 소비자단체 대표와 간담회를 세 차례 가졌을 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간담회도 사실상 요식행위였을 뿐 통합 방침은 정부 차원에서 이미 결정돼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민 불편 해소를 내세우는 고속철 통합 논의에 정작 이렇다 할 여론 수렴이 없었던 셈이다. 그 흔한 공청회도 한번 없었다.

전문가들은 통합 이후 철도산업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청사진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독일 등 선진국형 모델을 추구하기는 커녕 고속철 통합 자체가 목적으로 단순히 코레일 독점시대로 회귀하는 모양새인 탓이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승객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직 통합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경영 효율화, 안전향상 측면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있다”며 “통합의 목적, 방법, 기대효과 등을 포함한 명확한 비전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철도인프라공학 교수도 “단지 두 기관의 통합만을 검토할 것이 아니라 철도시설 유지보수의 이관 등 보다 큰 틀에서 철도산업 구조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면밀한 검토와 논의를 거친 뒤 기관 통합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주영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는 “(통합 과정이) 너무 급하다는 느낌”이라며 "교차운행을 먼저 시행하면서 철도산업구조 전반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답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승모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도 “통합 땐 독점 운영으로 인한 운영 효율성 저하, 운임 인상 압박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교차 운행, 예약 통합, 차량 증차 등을 통한 좌석 추가 공급 효과를 일정 기간 시험해 본 뒤 통합 논의를 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코레일과 SR이 지난 2023년 발주한 차세대 고속열차(EMU-320)가 내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되면 자연스레 좌석공급이 늘어나는 데다 병목구간 해소 사업도 2028년께면 완료될 예정이다. 현재 운행 중인 KTX-청룡이 EMU-3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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