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10년 전 첫사랑의 기억에 다시 말을 걸 수 있다면

2025-12-20

* ‘고빗사위’는 ‘고비 중 가장 큰 고비’ 영어로 ‘클라이맥스(Climax)’를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첫사랑의 식어가던 기억을 언젠가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예를 들면 우리가 ‘건축학개론’의 주인공들이나 ‘너의 결혼식’의 주인공이라면. 너무 서툴렀거나 성급해 확실한 맺음을 하지 못한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항상 이러한 종류의 영화들에는 가슴에 남는 의문이 있는데, 김도영 감독의 영화 ‘만약에 우리’는 그 의문에 대한 해답과도 같은 작품이다.

더이상 지금 시대의 로맨스는 여러사람이 이뤄내는 화학작용이 아니다. 오로지 남과 여(성별은 달라질 수 있을지라도) 두 사람의 감정을 깊숙이 쫓아간다. 이는 OTT 작품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경향인데, 요즘 로맨스물은 그렇게 많은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는 정적들도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두 명의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작품을 채운다.

‘만약에 우리’는 2018년 유약영 감독이 연출한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가 원작이다. 중국 원작과 비슷하게 영화는 10년 전 풋풋했던 시절 우연히 만나 질투하고 사랑하고 헤어졌던 남녀가 다시 우연히 만나 지난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 작품이다. 딱히 둘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에 의한 엇갈림은 없는 편이다.

정적이라고 나타나는 강민재(이상엽)의 존재가 있지만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으며, 이들의 사랑을 방해할 부모님들도 제대로 없다. 주인공 이은호(구교환)은 아버지만 있고, 정원(문가영)은 아예 부모님이 안 계신다. 그나마 은호의 아버지(신정근)는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묵묵히 지켜보는 편이다. 이들의 사랑이 타오르고 사위어가는 과정은 결국 ‘가난한 연인’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의 충돌 때문이다.

보통 로맨스물에서 관계로 인해 외부적인 자극을 주인공들이 지속적으로 받는 쪽이라면, ‘만약에 우리’는 인물 내면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괴로움이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들에게 꿈은 처음에는 생각만 해도 벅찬 대상이었다가,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서로를 짓누르는 짐이 되고, 상대에게 모진 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만약에 우리’는 현실공감 로맨스라는 말답게, 그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줄거리를 갖고 사랑의 서사를 구성했다.

은호의 10년 전, 후를 연기한 구교환의 연기는 10년 전은 풋풋하지만 10년 후는 안정돼 있다. 확실히 같은 나이대 연기를 할 때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문가영의 연기 역시 그렇다. 확실히 20대 초반을 연기할 때보다 좀 더 감정이 켜켜이 쌓인 30대의 연기가 자연스럽다. 구교환은 노련하게 서사를 이끌고, 문가영은 첫 번째 성인 역 주연임에도 준수하게 서사를 따라간다.

앞으로 돌아가서, 결국 두 사람은 10년 전 서로에게 공허함을 안겼던 이별을 한 후 다시 그 감정에 대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어떤 사람은 확실히 ‘성숙한 이별’을 통해 10년이 넘는 감정을 정리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동안의 감정을 되살리며 ‘다시 시작하자’고 해볼 법도 할 것이다. 영화는 화려하거나 박진감이 있지는 않지만, 조용히 내면의 사랑을 돌아보는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OTT에 유행하던 서사가 단 두 명의 주인공으로 구현되는 작품이다 보니, 영화 전체가 허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가난한 연인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신화’가 없는 서사는 오히려 현실의 피곤함을 배가하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결국 예전의 사랑에게 다시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설정이 후련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괜한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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