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펙서 외교무대 선 한복·갓
K컬처 넘어서 K전통으로 확장
경주가 교토·나라에 못지않은
아시아의 고도가 될 날을 기대
일본 교토, 나라를 두어 번 여행하면서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정말 많다. 교토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 도시는 외국인이 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나라는 나라국립박물관, 도다이지(東大寺) 인근이 그렇다. 여기저기서 한국어, 중국어, 영어가 들려 온다. 지난해 교토시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088만명이었다고 한다. 나라시는 297만명이었다.
교토, 나라와 비슷한 데가 많은 한국의 도시가 경주다. 교토와는 자국의 ‘1000년 수도’라는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다. 나라와 비교하면 전체적인 인상이 비슷하다. 고대의 왕궁터, 고분 등이 일상적 공간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그런데 외국인 관광객 수를 놓고 보면 비할 바가 못 된다.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117만9094명이 경주를 찾았다.

양국을 대표하는 오래된 도시라는 공통점을 가진 경주와 교토, 나라는 어째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 문화적 힘이 다른 데서 비롯된 격차라는 게 나름의 결론이다. 한국 문화, 특히 그 뿌리인 전통문화의 세계적 저변, 인식은 보다 확장되고 탄탄해져야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되돌아보면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신라 금관에 매료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에이펙의 가장 도드라진 에피소드였다. 국빈 선물로 우리 정부가 준비한 금관 모형에 홀딱 빠졌음을 그의 몸짓과 표정을 근거로 분석한 외신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실어 굳이 직접 챙겨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지극히 단순하고 솔직한 그의 행동이 어린아이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야 더할 나위 없는 유물이지만 외국인들은 존재를 알았을까 싶은 신라 금관은 세계 최고 권력자의 눈을 사로잡음으로써 이제 상당한 유명세를 누릴 것이다. 그것이 한국 고대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란 기대도 해볼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권력만큼이나 강한 ‘반트럼프’ 정서에 신라 금관이 엮일 수 있다는 게 개운찮아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긴 하다.
‘한복 외교’도 눈길이 간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인 김혜경 여사는 각국 정상들의 배우자들과 함께한 공식행사 내내 한복 차림이었다. 경주의 야경 명소로 꼽히는 월정교에서 열린 한복 패션쇼에는 캐나다 총리의 부인 다이애나 폭스 카니 여사가 함께했다. K팝의 선두주자인 지드래곤은 공식 환영만찬 공연에서 갓을 모티브로 한 모자를 쓰고 나왔다. 그 모습을 만찬에 참석한 각국 정상과 대표들이 직접 휴대전화 영상으로 담았으니 한복 외교에 제대로 일조한 셈이다.
사실 국제행사에서 전통문화를 적극 알리는 건 별스러울 것이 없다. 2005년 부산 에이펙 정상회의에서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등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두루마기 차림으로 기념촬영을 했던 것은 많은 사례 중 하나다. 한국 말고라도 국제행사를 주최한 나라라면 다들 그렇게 한다.
하지만 경주 에이펙은 한국문화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 개최돼 파급력이 이전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음악, 영화, 드라마에서 시작한 한류는 위력을 더하며 세계 곳곳에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것까지로 발전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방영 후 갓, 민화 소재인 까치호랑이에 관심이 폭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경주 에이펙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자국 최고지도자의 외교활동을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접했을 것이다.
경주가 교토, 나라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아시아의 고도(古都)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 한국 고대문화의 중심지인 경주의 비상은 곧 한국문화 전체의 위상 강화다. 바람대로만 된다면 미국과의 관세협상 마무리, 핵추진잠수함 도입 단초 마련, 냉랭했던 중국과 관계 개선 등을 넘어서는 경주 에이펙의 성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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