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화재가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 ‘무정전전원장치(UPS)’ 이전 작업이 불법적인 하도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이전 작업 경험이 없는 하도급 업체가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원 차단과 배터리 방전 등 기본적인 작업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배터리를 옮기려다 화재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대전경찰청 수사전담팀은 국정자원 화재와 관련해 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이전 작업 과정에서의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전기공사업법은 전기 공사를 도급받은 업체가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자원 전산실 배터리 이전 공사는 하청의 재하청 구조로 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조사 결과를 보면 화재가 발생한 국정자원 5층 전산실 배터리 이전 작업은 대전에 있는 전기공사 업체 1곳 등 2곳이 공동 수주했다. 본래 이들이 직접 공사를 수행해야 했지만 이들 업체는 제3의 전기공사 업체에 하도급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당시에는 실제 공사를 담당한 제3의 업체가 재하도급을 주는 형태로 2개 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배터리 이전 작업을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전 작업 당시 실제 공사 수주 업체 관계자는 현장에 없었고, 하도급을 받은 제3의 업체 직원이 서류상 수주 업체에 입사한 것처럼 꾸며 실제 공사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이 전기공사업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전 작업을 담당한 제3의 업체와 재하청 업체 직원들은 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이전 공사 경험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작업자들로부터 이전에 UPS 설치 공사는 해 봤지만 이전 공사는 경험이 없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흔하지 않은 작업이라 배터리 방전 등 이전 작업 시 필요한 메뉴얼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에서는 이미 공사 과정에서 전원 차단과 배터리 방전 등 기본적인 공사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공사 전 UPS로 들어가는 주 전원(메인차단기)은 차단했지만, 배터리팩과 연결된 부속 전원(랙 차단기)은 차단하지 않고 작업을 했다는 게 작업자들의 진술이다. 배터리 방전도 이전 작업을 위해서는 충전율이 30% 아래로 낮춰져야 하지만 경찰이 로그 기록을 통해 확인한 화재 당시 충전율은 90%였으며, 전문가 자문을 거쳐 보정한 실제 충전률도 80% 정도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 진술을 통해 공사 과정에서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부분을 여러가지 확인했다”며 “현장에서 랙 전원 차단과 배터리 방전이 이뤄지지 않았고, 절연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분리한 전선에 대한 절연 작업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정자원 화재 이후 국정자원 관계자와 공사·감리업체 관계자 등 모두 29명을 불러 조사하고, 이 가운데 5명을 업무상 실화 혐의로 입건해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국정자원에서 압수한 압수물 분석도 대부분 마무리 한 상태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은 화재 발생 배터리 등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가 나와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 유성구 화암동 국정자원 본원에서는 지난달 26일 오후 8시15분쯤 5층 전산실 내 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이전 작업을 하던 중 불이 나 배터리팩 384개와 전산장비 등이 소실됐다. 이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709개가 가동 중단돼 현재도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