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재 빈발’ 발전소, 중대재해법 시행 후 안전감독관 대신 ‘이동식 감시카메라’ 늘려

2025-10-21

서부·중부발전 2020년 법 시행 후 300여개 설치

안전감독 명목, 대개 작업자 동의 없이 촬영 시행

노조 “개인정보 침해, 책임 전가하려는 의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주요 발전소들이 인력을 충원하거나 안전장치를 개선하기보다 이동식 카메라를 설치해 노동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 중 사고가 발생할 경우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우려가 있고, 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몇년간 주요 발전소에 바디캠 및 휴대용 블랙박스, 이동식 캠코더, 간이 설치형 블랙박스, 개조형 폐쇄회로(CC)TV 등이 다수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서부발전이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회사는 2020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이동형 블랙박스 355개를 설치했다. 사업소별로 태안 158개, 서인천 60개, 평택 53개, 본사 45개 등이었다. 서부발전 산하 태안화력발전소는 지난 6월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씨와 2018년 김용균씨가 숨진 곳이다. 이 외에도 발전 5사에서 한국중부발전 386개, 한국동서발전 59개, 한국남동발전 28개 설치됐다.

특히 2020년 중대재해법 국회발의 후 이동형 블랙박스가 다수 도입된 것이 특징이다. 이전에는 설비 이상이나 화재 등을 감시하기 위해 고정형 CCTV가 주로 설치됐는데, 이동형 블랙박스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근거리에서 촬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측은 안전 관리감독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작업자들의 동의 없이 이동식 카메라를 활용한 감시가 강화됐다고 증언했다. 태안화력발전에서 일한 김영훈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은 “작업자들한테 책임을 묻는 이동형 카메라는 옳지 않다고 거부해왔는데, 현장에서는 계속 이런 촬영이 강화되고 있다”며 “노동자들을 거의 마킹하는 형식으로 이동형 카메라를 들고 관리감독자들이 찍고 있다. 카메라 삼각대, 고프로 등을 가지고 촬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책임 소재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고 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의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선 동의서를 받아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촬영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중부발전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이 카메라 설치에 반발하자 눈에 잘 띄지 않게 블랙박스를 개조한 사례도 있다.

안전보건 상황을 감독하고 지휘해야 하는 관리감독자는 작업 전 카메라만 설치해두고 현장을 떠나기도 한다. 공공기관 위험 작업시 2인1조 근무가 원칙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노동자 홀로 근무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지난 6월 태안화력 하청노동자 고 김충현씨도 보조자나 감시자 없이 홀로 작업하다가 기계에 끼어 숨졌다.

이러한 이동식 영상정보처리기기 구입 비용은 산업안전관리비용에서 지출되고 있다. 노동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안전인력 투입과 위험구역 개선 없이 산업안전관리 예산이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지능형 CCTV 등을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공공기관 안전관리 강화 방안으로 “지능형 CCTV, 드론, 인공지능(AI) 등을 현장에 적극 도입·확산하여 위험은 낮추고 효율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노동계는 “카메라 촬영은 안전관리 대책이 아닌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감시의 외주화’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 지부장은 “이동식 카메라 설치는 사고가 났을 때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것”이라며 “노동자들은 안전인력 충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와 발전소는 인력 충원 대신 스마트 감시체계를 만드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가 난 뒤 노동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는 게 아니라 감독자가 사전에 안전을 확인하고 위험이 있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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