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의대생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서 복귀 전공의와 복학 의대생들에 대한 신상털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수련병원으로 복귀한 전공의와 의대생을 ‘감귤(감사한 의사)’이라 칭하며 “감귤 사냥을 잘해야 이긴다”고 말한다. 오는 5일부터 시작하는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의대생·전공의가 내부 분위기를 결속할 수단으로 ‘집단 괴롭힘’을 선택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한 수련병원에서 일반의로 근무하는 A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의사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집단 린치를 폭로합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의사) 커뮤니티의 기준에 맞지 않는 근무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신상이 공개되고 몇 주간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지난달 초부터 서울의 한 수련병원 정형외과에서 촉탁의(계약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A씨 글에 따르면 근무를 시작한 직후부터 메디스태프에 A씨를 겨냥해 실명 또는 초성을 언급한 비난 글이 올라왔다. A씨는 의정 갈등 사태 이전 다른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로 일하다 사직했는데, 새 병원에선 정형외과에서 일하게 됐다. A씨를 공격하는 의사들은 "A씨가 인기과인 정형외과에 입성하기 위해 미리 촉탁의로 근무하는 것"이라며 "배신자"로 지목한 것이다. A씨는 “면접관이 이전 근무자들이 협박 전화를 받고 그만뒀는데 괜찮을지 물어보셨으나 당시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동기 선생님이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온 것을 알려준 뒤 그분은 바로 그만뒀고, 저는 그만둘 수 없어 계속 근무했다”고 말했다.
이후 A씨를 향한 의사 커뮤니티의 모욕은 갈수록 증폭됐다. A씨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그가 근무를 시작한 당일 의사 커뮤니티에 “OO 병원에 2명이 지원했다는데 누군지 아는 사람”이라며 신상을 캐묻는 글이 올라왔다. 이틀 뒤 A씨와 입사 동기 1명의 실명이 공개됐다. 이때부터 “동료 등에 칼 꽂고 신나냐?”, “배신자 낙인찍어야 한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의사 커뮤니티의 조리돌림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대상이 확대됐다. 해당 커뮤니티에선 수련병원에 복귀한 의사를 감귤로 부른다. 원래는 지난 2월 전공의 이탈 당시 병원에 다시 복귀한 수련의만 지칭했다. 최근엔 일반 병·의원이 아닌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의사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A씨도 그런 사례다.
복귀 전공의뿐만 아니라 학교로 돌아간 의대생도 신상털기 피해자다. 메디스태프에선 ‘OO대 본과 1 감귤 누구냐’, ‘OO대 유급 감귤 사실이냐’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댓글로 정보를 공유한다. 사실 확인된 복학 의대생은 실명과 사진이 올라가며 놀림거리가 된다. 수도권 소재의 한 의대생은 “이런 분위기가 무서워서 복귀를 못 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 관련 기사도 이른바 ‘좌표’가 찍힌다. 이날 A씨의 폭로 글을 담은 각 언론사의 기사는 “악마화 기사 진압하자”라는 게시글에 모두 공유됐다. 이 글을 본 커뮤니티 회원들은 기사를 클릭해 의사에 우호적인 댓글을 작성하거나 의사를 비판하는 댓글엔 ‘싫어요’를 눌러 여론을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지난 2월 전공의 이탈 이후 의사 커뮤니티 내부의 ‘기사 좌표 찍기’는 일상화됐다. “댓글 정화, 우리가 밀리는 중”, “댓글 상태 초비상이다”며 반응을 바꾸는 구체적인 지침까지 공유한다. 이를테면, 1순위는 ‘우리 편 댓글 올리고 댓글 쓰기’, 2순위는 ‘(의사 악플에는) 비추천 신고 필수’라는 식이다. 기사 좌표는 수시로 커뮤니티 인기 글에 올라 댓글 ‘화력’을 집중하기도 쉽다.
문제는 오는 5일 내년도 수련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복귀 전공의·복학 의대생을 향한 신상털기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 커뮤니티 내부에선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감귤(복귀 전공의) 사냥으로 내부 결속을 다져오지 않았느냐”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경찰은 이러한 명예훼손을 방조한 혐의로 메디스태프 대표 등에 대해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A씨 또한 주도자가 있다고 판단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한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특정 의사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 조사 및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의 개정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현재 100명 이상이 동의해 공개 청원 전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