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한 최정호(22·가명)씨는 구독자 수 9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게임 채널에서 유튜버의 업무 지시를 받아 석 달간 영상 37편을 편집했다. 하지만 최씨는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일을 한 적이 없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올해 3월 초까지 많게는 매달 160시간씩 재택근무 형태로 일을 했지만,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월급은 90만원 남짓. 법정 최저임금(올해 기준 9860원)에 못 미치는 시급 5600원 수준이었다. 최씨는 “계약서를 쓰자고 하니 이상한 사람 취급당했다”며 “‘완성 영상 1분당 1만원’ 단가에 맞춰 일하는 건 업계 내 고질적인 관행”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강도 높은 업무에 지난해 11월부터 사직 의사를 밝혔지만 “후임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그가 일을 관두기까지 반년이란 시간이 더 걸렸다. 그동안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에 걸렸지만, 돌아온 건 “누구나 잔병치레 하나쯤 달고 사는 거 아니냐”는 비아냥뿐이었다고 한다. 최씨는 “평생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두려웠다”며 “결국 번호를 차단하고 내가 잠수를 타고 나서야 끝이 났다”고 회상했다.
화려한 유튜브 세상의 이면에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편집 스태프들의 계약서 없는 ‘유령 노동’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7일 서울중앙지법이 채널 ‘자빱TV’ 제작 스태프에게 ‘근로자성 인정, 체불임금 지급’ 판결을 내리는 등 소송 끝에 법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현실에선 노동환경 개선이 요원하단 평가가 나온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인해 단가 후려치기·보수 체불·근로시간 미준수 등 여러 형태의 노동 착취가 여전히 업계 ‘관행’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용주인 유튜버가 대금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상 편집 8년 차 장명훈(25·가명)씨는 지난 2~4월 구독자 100명대 신생 유튜브 채널에서 일하고 한 달 반 대금분인 140만원을 아직도 받지 못했다. 그는 해당 유튜버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계약 기간이나 보수 산정 방식 등을 적시하지 않는 ‘불완전’ 계약서에 서명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장씨는 2020년에 구독자 36만명에 달하는 게임 방송 채널에서 세 달간 일하다 ”편집 구조를 바꾸겠다”는 유튜버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해고당하기도 했다. 3개월 만에 해고된 터라 퇴직금·실업급여 지급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았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지난해 8월 28일부터 10월 9일까지 영상 편집자 285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 전체의 45%(127명)는 ‘최근 1년 동안 부당 대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대금 지급 지연·미지급·적게 지급’ 등 보수와 관련된 부당대우 경험(46%)이 가장 많았다.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35.5시간으로, 주 52시간을 넘는 경우는 53명(19%)에 달했다. 평균 월 소득은 143만원에 불과했다. 폭언 등 언어·정신적 폭력과 성폭력 등 신체적 폭력에 시달렸다고 답한 이들도 각각 18명(6%), 4명(1%) 있었다.
한 영상 편집자는 “구직 공고와 다른 업무를 요구하길래 거부했더니 고압적인 태도로 욕설을 퍼붓더라”고 말했다. 김영민 센터장은 “업계 내 평판·포트폴리오로 알음알음 이직하는 업계 특성상 쉽게 반기를 들지 못하는 걸 악용한 갑질 행위”라고 지적했다.
1인 유튜버가 아닌 규모 있는 업체와 일하더라도 부당대우는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구모(23)씨는 지난 8월 메타버스 플랫폼 ‘ㄷ’ 업체 소속으로 유튜브 영상 제작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통상 6개월 걸리던 일을 3주 만에 해내라는 업무 지시가 떨어지면서 하루 12~24시간씩, 일주일에 90시간 넘게 일한 적도 있다. 구씨 계약서상엔 ‘주 52시간 근무’로 명시돼 있었다. 현재 구씨는 과로로 인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다. 그는 “업체를 상대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형사소송을 진행 중이며, 산업재해보상보험 처리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시장에서 고용주인 유튜버에게서 부당대우를 받더라도 권리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종속적인 지휘·감독을 받아도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근로자성 여부에 관한 진정 건수를 집계조차 하지 않는 등 관련 통계도 부재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노동자는 노동청을 통한 권리 구제 대신 시간·돈이 많이 드는 민·형사상 소송을 거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유튜버 업계에 만연한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감독 당국에서 보다 적극적인 계도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은성 샛별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유튜버 편집 노동자의 99% 이상은 근로기준법 밖에 내몰려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며 “노동법을 위반했다는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가장 분명한 건 근로계약서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원일 노무법인 늘품 대표노무사는 “근로계약서 작성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사회적 인식은 못 미쳐 답답하다”며 “유튜브 산업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 선제적인 관리·감독에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