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제조업체들은 가격 뿐만 아니라 기술력과 생산 속도에서도 중국 기업에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액 공제 중심의 기업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고 혁신 산업별 지원, 성장형 프로젝트에 대한 선택과 집중 등 정부 지원 정책이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1일 '한·중 산업경쟁력 인식 조사와 성장제언'을 주제로 국내 제조기업 37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 기업이 중국보다 기술 경쟁력이 앞선다는 응답이 전체의 32.4%에 그쳤다고 밝혔다. 양국 기술 경쟁력에 차이가 없다는 답은 45.4%, 오히려 중국이 앞선다는 답은 22.2%에 달했다. 2010년 동일한 조사에서는 우리 기업이 앞선다는 답이 89.6%였지만 15년 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가격 면에서는 응답 기업 84.6%가 우리 제품이 더 비싸다고 답했다. 특히 중국산이 우리 제품보다 30% 이상 저렴하다는 답은 53%로 과반에 달했다. 업종별로 보면 중국산이 30% 이상 저렴하다는 답은 디스플레이(66.7%), 제약·바이오(63.4%), 섬유·의류(61.7%) 등에서 많았다. 실제로 세계무역기구(WTO) 산하 국제무역센터(ITC)의 트레이드 맵 자료에 따르면 한국산 대비 중국산 제품 가격은 메모리 반도체가 65%, 리튬이온 배터리는 73%, 두께 10㎜ 초과 후판 기준 철강은 87%, 면 소재 섬유·의류는 75% 수준이었다.
한국 기업의 강점으로 꼽히던 제조 속도에서도 중국이 우위라는 답이 42.4%를 차지해 우리가 빠르다(35.4%)는 답보다 많았다.
기술·속도·가격면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밀리는 것으로 인식한 만큼 한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과 매출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산업의 성장이 3년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국내 제조기업 10곳 중 7곳(69.2%)이 ‘한국산업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감소하고 매출도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대한상의는 이 같은 한·중 기술 역전 현상의 배경이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 지원과 유연한 규제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국은 1조800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주도 기금 등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지만, 한국은 세액공제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마저도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공제율이 낮아지는 역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전략기술 사업화시설 투자세액공제는 중소기업 25%, 중견기업 및 대기업 15%, 일반 기술의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는 중소기업 25%, 중견기업 8%, 대기업 2% 등으로 역진적 구조를 갖고 있다.
대한상의는 이같은 인센티브 구조를 재설계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 배터리 등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첨단산업에는 규모별 지원이 아닌 혁신 산업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정부 지원도 '나눠 먹기' 식을 벗어나 성장형 프로젝트와 기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업이 투자 지원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일반지주회사가 GP(펀드운용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광역 단위 지역에 대해 미래 전략 산업의 규제를 유예하고 산업 육성과 실증을 추진하는 메가 샌드박스를 추진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한국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는 지금은 N분의 1이 아닌 '몰아주기'가 필요한 때"라며 "우리 기업들이 더 많이 투자하고 기술력을 키울 수 있게 성장지향형 정책으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