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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기자가 방문한 충북 청주시 옥산면에 위치한 A 종이팩 재활용 업체는 모처럼 일감을 받아 분주했다. 원통형 선별기(트롬멜)와 종이팩 광학 선별 설비에도 전원이 켜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팩을 지게차 버킷이 한가득 퍼올렸다. 종이팩 더미를 헤집을 때마다 시큼한 상한 우유 냄새가 풍겼다. A사 관계자는 “공장은 일주일 중 하루만 가동한다”며 “공장 가동률은 20% 수준으로 일주일간 모아온 물량도 하루 작업이면 끝난다”고 말했다.
A사가 일주일에 하루만 공장을 가동하는 이유는 종이팩이 제대로 분리수거 되지 않아 공장에 오는 물량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종이팩이 대부분 종이와 같이 분류되거나,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 종이팩 전체 출고량의 약 60%는 폐지로 배출되고, 27%가량은 종량제 봉투에 담겨 배출돼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다.
2022년 국내 종이팩 연간 출고·수입량 7만4423t 중 재활용 물량은 9877t로 재활용률이 13%에 그친다. 정부가 정한 재활용 의무량 1만9945t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95%가 넘는 철캔과 알루미늄캔의 재활용률과 비교하면 크게 낮다. 이 때문에 국내 종이팩 재활용 업체들은 원료 부족으로 일본산 종이팩을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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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팩은 우유와 두유, 주스 등 음료를 포장하는데 쓰는 종이를 주재료로 하는 용기를 뜻한다. 일반팩과 빛과 산소 차단을 위해 일반팩에 알루미늄박을 한겹 덧씌워 만든 멸균팩으로 나뉜다. A사는 일반팩과 멸균팩을 구분없이 수거해다가 일반팩은 일반팩대로, 멸균팩은 멸균팩대로 선별하고 압축한 뒤 제지회사로 납품하는 종이팩 전문 재활용 업체다.
제지회사는 A사로부터 받은 압축한 일반팩과 멸균팩을 이용해 다시 화장지와 백판지, 골판지 등을 제조한다. A사가 1개월 간 제조사(역회수)와 지역 아파트, 수거 협약을 맺은 카페로부터 수거해 오는 종이팩 물량은 총 70t 정도다. 1일 작업으로 소화 가능한 물량만 약 20t이기 때문에 한달에 3~4차례 작업으로 모든 물량이 소진된다.
환경단체와 재활용 업계는 종이팩을 별도로 분리하지 않는 ‘부실한 수거 체계’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페트병과 유리병, 캔·고철처럼 전용 수거함이 있는 포장재와 달리 종이팩은 별도 수거함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현행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은 분리수거대상 재활용가능자원의 품목 및 분리배출요령에서 종이류와 종이팩을 별도로 구분해 놓지 않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가장 시급한 사안은 종이팩 수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종이팩도 캔과 고철, 유리병과 마찬가지로 별도로 분리해 관리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하고 전용 수거함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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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종이팩 별도 수거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청주시는 71개 아파트 5만4000세대에 종이팩 별도 수거함 393개를 설치했다. 시범사업 단지에서 수거하는 종이팩은 연간 14t 정도다. 시업사업 참여 중인 아파트 관리업체 관계자는 “종이팩 수거함이 있어도 박스나 일반 쓰레기로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 이라며 “주민 대부분이 종이팩을 따로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환경부는 종이팩을 별도로 분리수거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분리 수거 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지침 개정을 유보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분리 수거 대상을 추가하게 되면 지자체마다 수거함을 설치해야 하고 추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며 “준비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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