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주거 혁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반영
"주거 공간 확장 흐름, 고객 맞춤형 설계가 미래될 것"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건설사들이 획일적인 주거 레이아웃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주거 공간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타 산업군과의 연계성도 높아지는 추세다.

◆ 거실·욕실도 취향에 맞게 옮긴다… 요즘 평면 트렌드는 '개성'
16일 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2027년 10월 입주 예정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 리츠카운티'(방배삼익 재건축)에 처음으로 추가선택 품목 브랜드 '디 셀렉션'(D Selection)을 선보인다. 인테리어 전문가가 가구별 설계·디자인·시공을 한 번에 해결하는 국내 건설업계 최초 상품이다.
3가지 중 한 스타일을 선택한 뒤 공사를 진행하면 번거로움 없이 인테리어를 마칠 수 았다. 이미 설치된 실내 가구나 마감을 철거하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자재를 대량 구매할 수 있어 입주를 앞두고 인테리어를 따로 하는 것보다 경제적이기도 하다. DL이앤씨 관계자는 "기존 아파트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고객의 니즈와 전반적 트렌드를 반영하며 주거 공간의 새로운 혁신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도 고객이 주거공간을 자유롭게 디자인하고 바꿀 수 있도록 '넥스트 홈'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집 내부 공간을 거주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새 평면 '넥스트 라멘구조'를 활용한다. 기존 벽식이 아닌 라멘구조(수직 기둥에 수평 부재인 보를 더한 구조)를 기본으로, 가구 내부 기둥은 없애 디자인에 차별점을 뒀다. 이렇게 구현된 구조체 안에는 공장에서 사전 제작한 모듈을 서랍처럼 채워넣을 수 있다.
가구 자체가 벽이 되는 자립식 가구를 설치하거나 욕실을 원하는 곳에 둘 수 있는 '인필(In-Fill) 시스템'도 도입했다. 조립형 모듈방식 건식바닥과 벽체를 개발해 바닥이나 벽을 손쉽게 해체하고 재활용하거나 재설치가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입주한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신반포아파트 15차 재건축) 게스트하우스에는 OSC(탈현장 공법)로 제작한 욕실이 설치됐다.
2031년 입주를 앞둔 경기 과천시 '래미안 원마제스티'(과천주공10단지 재건축)에는 가구원 선호에 따라 설치나 이동을 선택할 수 있는 '퍼니처 월'(Furniture wall)을 적용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금까지 집에 라이프스타일을 맞춰왔다면, 앞으로는 집이 고객의 삶을 맞춰가는 주거 패러다임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아파트 내부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H 트랜스포밍 월&퍼니처Ⅲ'를 공개했다. 거실 벽을 옮겨 하나의 공간을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버튼을 누르면 거실 월플렉스(벽면 맞춤형 거실장)가 이동하고, 벽에 매립돼 있던 책상과 퀸사이즈 침대가 나온다. 월플렉스의 위치에 따라 같은 공간이 게스트룸이나 홈 오피스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분양한 인천 연수구 '힐스테이트레이크송도 5차'에 처음 적용됐다. 무거운 가구가 움직여야 하다 보니 고하중을 버티는 설계를 적용했고, 가구가 움직이며 발생하는 소음이나 발끼임 등 사고 방지를 위해 각종 장치를 설치해 정숙성과 안정성을 추구했다는 것이 현대건설의 설명이다.
포스코이앤씨는 딩크족, 4인 가족, 3대가 함께 사는 가족 등 고객 유형별 20개의 특화 평면을 제시했다. 공간의 유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둥을 외각으로 배치해 평면 내 내력벽을 최소화했다. 예컨대 생활패턴이 다른 신혼부부의 경우 안방의 수면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기존 공용욕실 면적을 확장하거나 변형할 수 있다. 학령기 자녀 2인을 둔 4인 가족이라면 자녀 방 사이에 공유 가능한 스터디룸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체 브랜드인 '더샵'과 하이엔드 브랜드 '오티에르'에 순차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분양하는 단지를 통해 다양한 구성으로 선보이게 된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고객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 변화하는 니즈에 대응할 수 있는 주거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건설업계 "평면 특화는 자연스러운 수순… 더욱 개발될 것"
업계에선 아파트 내부 구조 변화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가족 유형이 다양해짐에 따라 건설업계가 가구 구성원의 개별적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일률적이었던 아파트 평면도 다채로워질 수밖에 없다.
주서령 경희대 주거환경학과 교수는 "2000년대 이전까지는 특정한 위치에 고정돼 있던 공간이 비교적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평면계획의 획일화를 벗어나고자 하는 건설업계의 시도와 가족 공간의 변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공간의 배치와 계획적 중요도에 반영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회사마다 고객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할 때마다 시기별로 원하는 평면이 달라진다"며 "기술 개발이 곧 브랜드 이미지로 이어지다 보니 심혈을 기울이는 곳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공법을 도입하거나 기술 개선을 통해 경제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아파트 구조에 변화를 주는 회사가 늘었다. 특히 벽식이 아닌 기둥식 시공 방식은 인건비 부담이 큰 현장 시공을 줄이고 구조적 유연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대주'로 언급되기도 한다.
공간 구조의 유연화는 타 업계로의 협력 가능성을 키울 기회가 되기도 한다. 건설업계가 기능적 편의를 넘어 더 나은 주거의 조건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하게 된다면 연관 산업의 다양한 기업과의 소통이 강화될 수밖에 없어서다.
손상희 LG경영연구원 공간연구소 연구위원은 "모듈화 건식 공법이 활성화되면 건설업체는 가전기업과 함께 공간화한 가전을 테스트해야 할 것이고, 편리한 스마트홈 구축이 목표라면 설계 단계에서부터 통신사와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결국 아파트 구조의 변화는 다양한 회사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