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잘 나가는 기업은 사장 말보다 '데이터'를 따른다

2025-08-08

2002년 미국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서부 해안에 본사를 둔 기업은 16곳에 불과했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전체의 20%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20년 그 숫자는 32개로 두 배 늘었고 시가총액 비중은 무려 47%에 달했다. 20년 만에 벌어진 극적인 판도 변화의 중심에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있다. 이 혁신의 동력으로 흔히 괴짜 천재 창업자들, 즉 ‘긱(Geek)’을 꼽는다. 그러나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부교수이자 기술경영 전문가인 앤드루 맥아피는 신간 ‘긱 웨이(The Geek Way)’에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짜 혁신은 몇몇 천재의 아이디어나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 곧 조직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일도 어렵지만 빅테크로 키워내는 일은 훨씬 어렵다. 초기에 반짝 주목을 받고 투자를 유치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제품의 혁신성과 고객 만족을 유지하며 성장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경영 철학과 조직 문화, 다시 말해 ‘긱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앤드루 맥아피는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기술 및 운영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 부교수를 거쳐 현재 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디지털 기술과 경영 혁신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인터뷰와 현장 연구를 통해 기술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맨 앞선에서 지켜본 학자다. 2014년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와 함께 쓴 ‘제2의 기계시대’는 기술과 사회의 미래를 전망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분석한 실리콘밸리의 성공 기업들은 경영 방식과 조직 문화에서 네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과학, 속도, 주인의식, 개방성이라는 규범이자 기업 문화다. 맥아피는 이런 경영 방식을 가진 회사를 ‘긱 기업’이라 부른다. 얼핏 보기에 익숙한 단어들이지만 이를 실제 조직 문화로 구현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긱 기업의 첫 번째 특징은 ‘과학’, 즉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이다. 감이나 직관보다 실험과 검증을 중시한다. 예컨대 구글은 홈페이지의 색상을 정할 때 수백만 명의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클릭률이 높은 색상을 선택했다. 반면 전통 기업들은 다양한 디자인 시안을 놓고 긴 회의 끝에 상사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흔하다. 극소수 상사의 판단에 의존한 결정이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일의 추진 방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바로 속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윌 마셜은 스타트업 플래닛랩스를 창업해 정교한 계획 대신 빠른 실행과 반복을 통해 서비스를 개선해 나갔다. 그는 NASA에서 다섯 번의 우주 탐사에 참여했지만 플래닛랩스에서는 서른다섯 번 로켓을 발사하고 500기의 위성을 쏘아 올렸다. 축적된 시행착오와 반복 실험을 바탕으로 그는 기존 기업의 1000분의 1 수준의 비용으로 고해상도 위성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NASA처럼 완벽한 계획과 검증을 전제로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혁신이다.

저자는 넷플릭스의 사례를 자주 인용한다. 2015년쯤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다운로드 기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한 직원들이 기능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자 그는 자신의 판단을 철회하고 의견을 수용했다. 이는 긱 방식이 조직 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들이 데이터에 기반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열린 논쟁을 통해 방향을 수정하며 결정을 만들어가는 구조다.

많은 기업이 실리콘밸리를 흉내낸다. ‘수평적’ ‘개방적’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직급 대신 영어 이름을 쓰고 복장 자율화를 시행하며 사무실에 간식과 빈백을 두는 회사들이 있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은 외형을 흉내낸다고 바뀌지 않는다. 조직 문화는 가장 견고하고 바꾸기 어려운 혁신의 본질이다. 실리콘밸리의 생생한 사례가 풍부하게 담긴 ‘긱 웨이’는 우리가 일하고 있는 방식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2만 5000원.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