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두 번 우는 자영업자
관련법상 임대료 5% 한도 내 인상
건물주, 규제 없는 관리비 20%대 ↑
소상공인, 갑질에 속수무책 당해
국토부 분쟁조정위 활성화 대책
조정성립 등 원만한 해결 30%뿐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등 지적
서울 강남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강모(40)씨는 지난달 관리비 계산서를 받아 보곤 두 눈을 의심했다. 월 135만원이었던 관리비가 월 170만원으로 26%나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분식집 면적이 66㎡(20평) 남짓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안 그래도 비싸게 느껴지던 관리비였다. 건물주는 갑자기 오른 관리비 청구서를 들이밀 때까지 별다른 설명조차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강씨가 겪은 관리비 기습 인상은 최근 서울 등 도심의 주요 상가밀집 지역에서 활용되는 ‘임대료 꼼수 인상’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상가임대차법상 임대료와 보증금은 계약 후 1년이 지난 뒤부터 5% 한도 내에서 인상할 수 있는데, 규제가 없는 관리비를 인상해 사실상 임대료 인상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방지책들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한숨만 깊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9일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강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하소연이 잇따랐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A씨는 “건물주가 바뀌어 월세 5%와 관리비 10만원 인상을 요구했다”면서 “화장실 문도 고장 난 채로 방치하는 등 관리도 하지 않으면서 1년 사이에 관리비를 15만원 올려 달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에도 건물주는 “면적 대비 월세가 너무 저렴해서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쏘아붙였다. A씨는 “건물주가 정당한 이유 없이 관리비를 올리면 어쩔 수 없는 것이냐”며 씁쓸해했다.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해 정부도 대책을 내놓긴 했다. 국토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으로 분쟁조정위원회 활성화와 표준계약서 작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실효성을 두고 현장에서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실을 통해 법무부와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가임대차분쟁 10건 중 7건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한 분쟁조정위원회가 제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표준계약서는 월 10만원 이상 정액관리비의 주요 비목별 부과내역을 상세하게 기재하도록 유도해 근거 없는 관리비 인상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강제성이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현실이 되고 있다.
사실상 무법지대로 전락한 상가임대 시장에선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 3년간 법무부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와 국토부 산하 한국부동산원, LH 분쟁조정위원회가 처리한 상가임대차분쟁 사건 수는 2022년 573건, 2023년 601건, 2024년 570건으로 매년 600건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조정 성립’이나 ‘화해 취하’를 한 비율은 3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분쟁 10건 중 7건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대책으로 제시한 분쟁조정위원회가 적극적인 조정에 나서기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도 한계로 거론된다. 현행법상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분쟁조정위원회는 기본적인 사실과 증거 조사도 없이 조정신청을 각하해야 한다. 실제 분쟁조정위원회의 전체 처리 사건 가운데 각하된 사례는 2022년 49.4%(283건), 2023년 47.4%(285건), 2024년 47.2%(269건)로 매년 절반가량에 달한다.
미국의 경우 소송으로 가더라도 법원이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판결하고 있다. 분쟁 당사자 모두 처음부터 분쟁조정위원회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유도하는 측면이 높아 조정의 성공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상가임대차법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관리비에 대한 비목별 부과내역을 상세하게 담은 표준계약서 작성부터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서울의 경우 보증금 9억원 이상인 상가는 상가임대차법상 임대료 인상 제한에서 배제되는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예외를 없애고 인상 가능 주기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국회엔 이런 내용의 상가임대차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7건이나 계류 중이다.
윤준호·소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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