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첫해 세제개편으로 2027년까지 60조 넘게 세수 감소
지난해 3월 4·10 총선을 앞두고 당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부가가치세 절반 인하를 공약했다. 가공식품 등의 부가가치세를 현행 10%에서 5%로 깎아줘 물가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필수 소비재에 부가가치세를 일률적으로 인하하게 되면 고소득층이 더 큰 혜택을 보게 되고, 재정건전성도 해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이 공약은 당시 여당의 대패 속에 실현되지 못했다.
큰 선거를 앞두고 감세 정책은 단골 메뉴로 거론된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 2월 ‘월급쟁이는 봉인가’라면서 소득세 개편을 시사했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한 분과인 월급방위대 역시 소득세 기본공제 확대 등 근로소득세 감면을 언급한 바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소득세 기본공제 상향, 종합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 등 각종 감세 공약을 제시했고,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도 법인세 국세분의 30%를 감면하고, 감면된 금액 전액을 지방세로 전환하는 등 감세를 지방균형 발전의 지렛대로 강조하고 있다. 그나마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상속·증여세 90% 인상, 순자산 100억원 이상 부유세 신설과 같은 증세를 전면에 내걸었다.

대규모 감세 정책, 특히 3대 세목(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을 건드리는 공약은 신중해야 한다. 우선 윤석열정부 3년 동안 각종 감세 조치로 재정 여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윤석열정부는 법인세 1%포인트 인하를 시작으로 종합부동산세 공제금액 상향 등 대규모 감세 조치를 단행했다. 출범 첫해 세제개편안 하나만으로 줄어드는 세수가 2027년까지 60조3000억원(누적법 기준)이 넘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감세 조치가 복원되지 않을 경우 차기 정부 5년간 세수 감소 규모가 1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대규모 감세에다 기업 영업실적 악화까지 겹치면서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2022년 117조원, 2023년 87조원, 지난해 104조8000억원을 나타냈다. 윤석열정부 3년 내내 나라살림은 악화됐다. 경제성장률은 2023년 1.4%, 지난해 2.0%, 올해는 1.0%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저성장은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경기 부양에 있어 재정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 정책은 국가신용등급 위험도를 높이고, 정부 경제 정책의 선택지만 줄일 뿐이다.
인구구조 역시 대규모 감세 정책이 합리적인 선택지가 아니란 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5명으로 9년 만에 반등하긴 했지만 인구가 많은 베이비붐 자녀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인구 효과를 제거하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반전됐다고 장담하긴 이르다. 지난해 12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노인빈곤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저출생 속도를 늦추고, 고령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재정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2015년 이후 조세특례 관련 106건의 심층평가(의무)가 이뤄져 6건에 대해 폐지 건의됐고, 18건은 장기적 축소 폐지가 건의됐지만 실제 폐지된 건 6건에 그쳤다. 감세는 한 번 단행하면 복원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대선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재정 확충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최대폭이 20조원 안팎에 불과한 지출 구조조정은 면피용일 뿐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디서 어떻게 증세를 해야 할지 제시해야 국가의 성장동력도 확보될 수 있다.
이희경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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