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을 공부해야 할 이유는 오늘날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종대(76)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2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선고 때 정치권은 잘못된 행태를 보였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헌재 지낸 법관, ‘이순신 공부’ 매진한 이유
김 전 재판관은 지난 10일 『의역 난중일기』를 냈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7년간 조선 바다를 지켰던 충무공이 직접 겪은 일을 일기 형식으로 쓴 기록이다. 김 전 재판관은 “기존 번역본 등을 골고루 참조하되 문장이나 날짜 기술 방식 등을 오늘날 독자도 쉽게 이해하도록 표현한 게 특징이다. 그래서 ‘의역’이란 말을 붙인 것”이라고 소개했다. 매해, 매달 일기 본문 앞에 당시 충무공 행적을 간략히 설명하고, ‘덧붙이는 말’로 일기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맥락을 설명했다.
김 전 재판관이 이순신 장군 공부에 몰입하기 시작한 건 1975년이다. 경남 창녕 출신인 그는 부산고를 졸업해 서울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공군 군법무관(중위)으로 복무했다. 이때 장교를 대상으로 한 정훈 교육을 하며 이은상 선생의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을 활용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충무공이야말로 공직자의 사표(師表)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교재로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정훈 강의는 당시 군 지휘부가 찾아와 들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400년 전 인물 충무공, 현대에도 귀감”
김 전 재판관은 군 복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부산고법·창원지법을 거쳐 헌법재판관(2006~2012년) 등 40년 가까이 법관으로 재직한 동안에도 이순신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충무공은 백성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기반에 두고, 정의와 자력으로 멸망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했다. 공직자로서 충무공은 늘 나라의 안위와 국민 삶을 위해 헌신했다”고 했다.
법관 생활을 마친 뒤 김 전 재판관은 변호사로 일하는 대신 서울ㆍ부산ㆍ여수 등지에서 이순신 교육에 매진하며 책을 썼다. 그는 “400여년 전 인물이지만, 오늘날 공직자 등 리더도 이순신 정신을 배워 익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 때 정치권에서 보인 행태를 보며 ‘이순신 공부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이 대표에겐 징역 1년의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확정되면 의원직 상실은 물론, 피선거권이 10년간 박탈된다. 야권은 이 결과를 ‘정치 재판’으로 몰아붙이고, 여권 일각에선 1심 선고인데도 ‘이재명 유죄’를 강조하며 사퇴 등을 압박한다. 김 전 재판관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공직자인 정치인들이 ‘나와 정당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남 탓에만 매몰돼 서로 날을 세운다. 언제나 백성의 삶을 먼저 살피며 헌신한 이순신 정신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직선거법 피선거권 제한, 적절한가” 소신 발언도
이 대표 재판과 관련, 법관 출신인 그는 소신 발언도 아끼지 않았다. 공직선거법상 벌금ㆍ징역 등 일정 이상의 형을 받으면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이에 대해 김 전 재판관은 먼저 “선거 부정을 방지해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법의 취지에는 일리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피선거권은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다. 법관 재량으로 정하는 벌금액수에 따라 이를 제한하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며 “벌금액을 정해야 하는 법관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벌금 99만원은 괜찮고, 101만원이면 문제가 된다’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국민도 많을 것”이라고 짚었다.
대안을 묻자 김 전 재판관은 “피선거권 제한 때는 ‘벌금 액수’ 대신 ‘유ㆍ무죄 여부’ 등을 기준으로 삼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그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ㆍ광역단체장 같은 파급력이 큰 선거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재판은 헌법재판소가 맡아 법관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