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미친년’ 됐습니다…딸들의 24시간 ‘간병 전쟁’

2025-02-27

어느날 루게릭이 찾아왔다

4화. 간병 전쟁

2020년 어느 날, 루게릭병 환자인 아버지를 돌보느라 며칠간 거의 밤을 새운 박찬숙(당시 39세)씨 입에서 원망이 터져 나왔다. 응철(당시 73세)씨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인공호흡을 위한 기관 절개로 말을 못하는 그는 힘겹게 이불에다 ‘손가락 글씨’를 썼다.

‘미안해. 근데 내가 너무 아프다.’

찬숙씨의 마음이 한없이 복잡해졌다.

‘아빠, 미안해, 내가 나쁜 년이야. 근데 나도 죽겠어. 내가 죽으면 아빠를 돌볼 사람이 없어.’

응철씨는 26년 전 부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두 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기처럼 기저귀를 차고 딸들의 돌봄을 받고 있다. 2019년 4월 찾아온 루게릭병 때문이다. 이 병은 응철씨뿐 아니라 두 딸 현숙(46)·찬숙(44)씨의 삶도 옭아맸다.

# 흔들린 일상, 삐뚤어진 글씨

‘현숙이는 바보’

지난 21일 경기도 고양시 찬숙씨 자택. 발병 초기 응철씨가 쓰던 수첩을 뒤적거리던 현숙씨가 삐뚤빼뚤하게 쓴 글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딸들에게 ‘예스’만 하던 천사표 아빠였는데, 정말 힘드셨나 봐요.”

그녀는 흔들린 일상처럼 삐뚤어져 버린 아버지의 글씨를 보는 것이 지금도 힘들다. 발병 전 아버지의 글씨는 깔끔한 성격을 말해주듯 유독 반듯했으니.

서울 충무로에서 제지업을 하던 응철씨는 친구 부탁으로 보증을 잘못 서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다. 여관업 등 여러 사업을 전전하다 철도 용역업체에 취직해 가족을 뒷바라지했다. 어느새 딸들은 결혼해 손자 3명, 손녀 한 명을 안겨줬다.

가끔 외롭긴 했지만 정년 후에도 빌딩 경비 일을 하며 평화로운 노년을 보냈다. 2018년 루게릭병 증상인 연하장애(음식과 침을 잘 못 삼키는 증상)와 술에 취한 듯 어눌한 말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병원에서는 뇌경색이 지나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손에 힘이 빠지면서 1년 만에 루게릭병을 확진받았다.

그는 딸들에게 짐이 될까 진단 후에도 전처럼 서울 가회동 집에서 혼자 생활하며 경비 일을 계속했다. “이겨낼 수 있다”며 걱정하는 딸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병의 진행 속도는 무서우리만큼 빨랐다. 사정이 생겨 늘 동행하던 현숙씨 없이 응철씨 혼자 병원에 간 날, 딸들은 아버지 주머니 속 쪽지를 보고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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