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한국 남자 골프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였던 김시우(당시 17세)는 제주도 합숙훈련에서 얼굴이 뽀얗고 예쁜 여자 후배를 처음 봤다. 남녀 불문, 골프 선수들은 대부분 얼굴이 까맣게 탔는데 이 소녀는 하얬다.
울산에서는 드물게 국가대표 상비군이 된 오지현(당시 16세)은 김효주나 백규정 같은 공 잘 치는 언니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어서 좋았다. 화려한 대표팀 선배들 중 스윙이 가장 멋진 선배는 김시우였다.
오지현은 “나는 지방 촌년인데 오빠는 약간 다른 세계 사람 같았다”고 말했다.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앞에 와서 얼쩡거리고 장난치는 오빠 김시우가 귀엽기도 했다.
둘은 친구가 됐다. 오지현은 “사귄다고 할 수준은 아니고 그냥 문자 친구 정도였어요. 같이 밥 먹은 적도 없어요”라며 웃었다.
제대로 사귀기엔 수비가 강했다. 벙커와 물로 둘러싸인 포대그린 수준이었다. 김시우는 “일반 학생과는 다르게 골프 선수는 항상 부모님이 옆에 계시니까요”라고 말했다.
오지현은 “나는 울산 살고, 오빠는 경기도 살고, 오빠는 국가대표라 규모가 큰 대한골프협회 대회만 나가고 나는 상비군이라 주로 중고연맹 대회만 나가니 만날 기회도 적었죠. 문자로 연락하는 사이였고 어쩌다 내가 대한골프협회 대회 나가면 ‘오빠 안녕’ 인사하는 정도?”


그런데 이런 풋풋한 10대 문자 연인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핸드폰을 빼앗길 때도 있었다. 당시 골프 대디들은 아이 성적이 나쁘거나 딴 생각을 하는 것 같으면 핸드폰을 압수하곤 했다. 합숙 훈련을 갈 때도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했다.
“오빠 나 한동안 연락 안 돼. ㅠㅠ 대회장에서 봐.” 이런 문자를 보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오지현은 “다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핸드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잘 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는 장점도 있긴 했다”고 했다. 김시우는 “아빠가 핸드폰을 어디에 숨겨놨는지 알아내서 몰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