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이 당선 이후 주요 무역 대상국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면서 한국도 도마 위에 오르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10일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6일(현지시각)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멕시코·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모든 제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이 세 국가는 공통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한 10대(大) 무역수지(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 흑자국에 해당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세 국가에 고율 관세를 부과해 무역흑자(미국 입장에선 적자) 폭을 줄이고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계산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눈엣가시 10개국 가운데 3개국만 먼저 관세 부과를 예고받은 건 이들 국가가 대규모 무역흑자를 볼 뿐만 아니라 미국 내 마약류·불법이민 확산에 원인을 제공하는 국가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마약류 오남용 문제만 보면 중국이 초강력 마약인 펜타닐을 밀제조하고 멕시코나 캐나다의 허술한 세관을 통해 미국에 밀반입한다는 게 트럼프 당선인의 의심이다. 2022년 미국 18~49세 국민의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과다 복용이었다.
트럼프 당선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10개국 중 남은 건 유럽연합(EU)에 속하는 독일·이탈리아·아일랜드와 아시아의 한국·일본·대만·베트남이다. 이런 상황에서 EU가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8일(현지시각) 미 방송사 NBC를 통해 “유럽은 무역에서 우리를 끔찍할 정도로 이용하고 있다”고 날을 세워서다. EU는 독일 등 4개국만 합쳐도 대(對)미국 무역흑자 규모가 중국·멕시코에 이어 3위다.
EU를 제외하면 한국도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부과 예고를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아시아 4개국 가운데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2024년 1~8월 444억9400만 달러)가 가장 적긴 하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3일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해제 사태에 따른 탄핵 정국이 펼쳐지면서 트럼프 당선인에게 대응할 통상당국의 구심점이 사실상 사라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보기에 한국이 약한 고리로 부각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선 “난감하다”는 말이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가 취임할 내년 1월20일을 기점으로 이전 50일과 이후 50일 등 총 100일가량이 트럼프의 관세 관련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며 “골든타임 가운데 국내에서 혼란이 벌어져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서 1기 트럼프 정부가 집권하기 직전인 2016년 말에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이 열리면서 트럼프발(發) 통상 압력이 고조되는 등 현재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바 있다. 그런데 그때보다 지금 환경이 더 안 좋다. 8년전(2016년 12월9일)에는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탄핵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대혼란 상태다.
불행 중 다행인 건 트럼프 당선인이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한·미 FTA는 미국 일자리 킬러”라며 한국에 명시적으로 공세를 폈지만(이후 개정 한·미 FTA 2019년 1월1일 발효), 최근 대선을 전후해서는 한국에 대해 무역과 관련한 특별한 발언을 안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에 일자리를 가장 많이 만드는 국가라는 점을 트럼프 당선인이 고려해 한국을 관세 부과 타깃에서 제외할지 검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이 협상을 할 때 ‘미치광이’ 전술을 펴는 만큼 가만 있다가 갑자기 공세를 펼 수 있다”며 “근본적으로 그가 취임 전에 무슨 말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취임 후 실제로 어떤 액션을 취하는지 보면서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