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벌어지는 틈, 사라지는 책임

2025-04-01

2007년,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터빈홀 전시실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콜롬비아 작가 도리스 살세도의 설치작품 ‘Shibboleth(쉽볼렛)’은 지면에 길고 깊은 틈을 만들어냈다. 발밑으로 패인 그 틈은 누군가에겐 조형적 개입이었지만 작가에게는 역사 속 폭력과 배제, 침묵의 흔적이었다.

살세도는 1958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나 독재 정권과 마약 전쟁, 이민자와 여성 차별, 정치적 실종 등 고통스러운 현실에 반응하며 작업해온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커다란 몸짓보다 사라진 존재들의 흔적에 더 집중한다. 의자나 신발 같은 일상의 사물을 변형하거나 공간 자체에 개입함으로써 ‘부재의 조각’을 만들어낸다.

작품 제목 ‘Shibboleth’은 고대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특정 발음을 기준으로 타인을 식별하고 배제하던 언어적 경계를 뜻한다. 살세도는 이 개념을 현대 사회의 국적·피부색·억양·출신·계급 등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작동하는 배제의 구조에 겹쳐 놓는다. 관객은 그 균열 앞에서 멈추고, 조심스럽게 넘거나, 때론 외면하며 우회한다. 이는 단지 조형적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균열’을 피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장치다.

우리는 여전히 이와 같은 틈 위에 서 있다. 혐오와 조롱, 차별의 언어가 일상이 되고 존재 자체로 의심받는 이들이 늘어난다. 정치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공기, 팔레스타인에서 계속되는 폭력의 악순환, 다시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의 메시지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가 우리인가’를 증명해야 하는 일들과 마주한다.

더 큰 문제는, 그 균열을 치유하거나 책임지는 일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리와 무능, 폭력과 불평등은 매일 반복되지만, 사과는 형식에 그치고 책임은 흐려진다. 균열은 발생 그 자체보다 방치될 때 더욱 위험해진다. 처음엔 작은 금이었을 틈은 고쳐지지 않은 채 점점 깊어지고, 마침내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균열로 확대된다. 침묵과 무관심은 분열보다 더 큰 파괴를 낳는다.

전시는 끝났고 균열은 메워졌지만, 그 자국은 테이트 모던 바닥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마치 우리가 외면해온 현실처럼. 살세도의 ‘Shibboleth’은 말한다. 균열은 무언가 잘못돼 생긴 결과가 아니라, ‘잘못됨’ 자체의 형태라고. 갈라진 바닥을 무심히 지나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균열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박재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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